민박집 부부의 가슴 아프면서도 따뜻한 사랑 이야기
가을이 시작되는 제주도. 보름살이를 하기 위해 섬을 찾았다. 동쪽 마을에 숙소를 정하고 섬 살이에 대한 기대에 찾아가는 길이 즐겁기만 했다. 그러나 사진으로만 확인했던 숙소는 내비게이션을 켜고도 찾아가는 길이 너무 어려웠다. 한참을 헤맨 뒤에야 겨우 좁은 골목 끝에 진입로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생각보다 으슥하고 인적이 드문 곳에 보름살이를 위한 집이 있었다.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민박집, 그런데 부부의 첫인상이 좀 묘했다. 남편 되는 분은 분명 친절하고 반가운 말로 나를 맞이해 주었지만 왠지 시선을 피하며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가림이 심한 분인가?’라고 생각했지만 뭔지 모를 독특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여자 사장님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분명 나를 보고 있으면서도 나를 보지 않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참으로 독특하고 묘한 느낌이 드는 부부였다. 그 느낌들이 뭐 때문인지 정확히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너무 후미지고 외딴곳에 위치한 숙소가 주는 낯섦까지 더해져 첫날 밤은 불안과 실체 없는 공포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똑똑,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날이 밝았는지 방 안 가득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새벽까지 뜬 눈으로 밤을 노려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기절하듯 잠이 들었나 보다.
“손님, 일어나셨어요?”
“네 ~ 저 살아 있어요 ( 물론 이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오늘 별다른 스케줄 없으면 저녁에 같이 식사해요. 환영회 겸 바비큐 파티 하려고요”
갑작스러운 저녁 초대에 순간 멈칫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 초대에 응했다. 그래 걱정했던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그날 저녁 난 두 부부와 정식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리고 한 겹 한 겹 내 실체 없던 공포의 미스터리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꽤나 알려진 회사의 잘 나가는 디자이너였던 그녀는 흔히 말하는 골드미스, 커리어우먼이었다. 실력도 열정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그녀를 모든 사람이 부러워도 했고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순간적으로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하지만 워낙 일도 많고 피곤해서 그렇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었다. 그런 날이 얼마나 흘렀는지, 어느 날 그녀는 완전한 번 아웃이 되어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시간이 찾아왔다. 그녀는 퇴사를 선택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휴식의 시간에 그녀는 행복해했다. 하지만 그런 행복에 깊이 빠져들기도 전에 그녀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찾아 간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이미 한쪽 눈은 거의 실명에 가깝고 나머지 한쪽 눈도 진행 중입니다.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고 최대한 실명의 시기를 늦추는 치료만 가능합니다.”
그녀는 절망했다. 실명? 내가 실명이라고?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그녀는 주저앉아 울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원망을 했다. ‘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 가혹한 처벌을 받는 거지? 남보다 더 열심히 살고 누구보다 더 노력하며 살았던 대가가 이런 거야? 이제 겨우 나를 위해 살아 보려고 하는 이 순간에 말이야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했다. 하지만 더 가혹한 현실이 바로 그녀에게 찾아왔다. 회사에서 그녀를 산재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분명 회사를 위해 모든 영혼을 갈아 넣을 만큼 충성한 회사였지만 퇴사를 한 후 받은 진단이라는 이유였다. - 그 시대는 현재처럼 노동자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하는 시절이었다.
실명을 막을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최대한 늦춰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했다. 그녀는 모아 놓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치료가 호전이 되지 않았다. 깊은 수렁 같은 절망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숨을 쉬는 것도 귀찮고 버거웠다. ‘이런 상태라면 곧 시력을 다 잃을 텐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한 번도 내가 시각장애인의 삶을 살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이런 현실이 나에게 닥쳐오다니. 이런 삶을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늪처럼 빠져드는 절망의 시간들이 흐르던 어느 날 그녀는 낚시터를 찾았다. 딱히 낚시에 취미가 있다거나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을 바라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아니, 도피하고 싶은 그녀의 현실을 애써 외면해야 하는 도구가 그녀에게 절실했다. 그렇게 찾기 시작한 낚시터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게 되었다. 그 말은 하루도 빠짐없이 무거운 현실이 그녀를 짓누른다는 말이기도 했다.
남자는 벌써 한 달 넘게 매일 낚시터까지 운행하는 버스에 오르는 그녀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저 여자 뭐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도, 주말도, 하루도 빠짐없이 여자가 낚시터를 찾는다? 뭔가 정신상태가 좋지 않은 여자인가? 하지만 겉으로 봐선 멀쩡해 보이는데 암튼 평범한 여자는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여러 날을 매일 보게 되는 그녀가 어느 날부터 점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더욱 마음이 쓰이는 것은 그녀의 어두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누구와도 말을 나누지 않고 혼자 오롯이 물만 쳐다보다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래도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자 어느 날 그녀가 버스에 오르며 남자에게 눈인사를 했다. 남자는 얼른 얼굴을 옆으로 돌렸지만 그녀의 눈인사에 마음이 흔들렸다. 내 얼굴을 보았을까? 화상 입은 내 얼굴을 보고 놀라지는 않았을까? 그녀의 눈인사는 설렘과 아픔의 기억을 함께 가지고 왔다.
남자는 교사시절 학교에서 화재가 일어나자 학생들을 최대한 대피시키기 위해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하지만 나중에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몸에 불이 붙어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무사히 대피했지만 남자는 얼굴부터 몸까지 많은 화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고통스러운 치료의 시간을 버티어 냈지만 그 후에는 더 고통스러운 차별의 시간이 찾아왔다. 아이들이 화상 입은 얼굴 보는 것을 힘들어한다는 것을 깨닫고 미련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나왔다. 점점 사람들 앞에 나설 자신이 없었다. 아니,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시선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 두려워하는 시선, 일부러 외면하는 시선 등등 그 모든 시선들이 자신에게 와서 가시처럼 박히는 시간들이었다.
그런 모든 시간들을 견디고 난 후 남자가 다시 찾은 일이 매일 낚시터를 운행하는 버스를 운전하는 일이었다. 굳이 사람들과 많이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고 혼자서 조용히 운전만 하는 되는 일이라 내 상황과 잘 맞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한 여자에게 계속 시선이 머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그녀가 오늘 남자에게 눈인사를 먼저 했다. 기쁜 마음보다 내 얼굴을 보고 혹시나 놀랐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며칠 째 그녀의 눈길이 남자를 스쳤다. 남자의 얼굴에 남은 화상의 흔적을 보았을 테지만 눈을 피하거나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낯설고 날카롭던 걱정이 어느새 따뜻이 녹아내렸다. 그 순간 남자는 비로소 그녀 앞에 제대로 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확신에 휩싸였다. 설렘은 예고 없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남자: 오늘 바람이 좀 까다롭네요. 입질이 잘 안 오죠?
여자: 물결 소리만 듣고 있으면 잡히든 말든 괜찮아지는 날이 있더라고요.
남자: 늘 물만 보다 돌아가시는 것 같던데요 하 하 하.
여자: 보셨어요? 사실 고기 낚는 것보다 이렇게 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아서 좋더라고요.
남자: 어떻게 안 볼 수가 있겠어요. 낚시에 미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매일 낚시터를 가는 버스에 오르는 분을요.
여자: 고마워요. 매일 나를 이곳으로 데려다줘서요.
그렇게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전신에 화상을 입은 남자와 시력을 잃어 가는 여자, 각자 커다란 아픔으로 허우적거렸지만 서로 위로해 주고 함께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기로 한 두 사람. 그 둘은 부부의 인연을 맺고 영원히 함께 하기로 했다. 서울 살이를 청산하고 둘 다 좋아하는 낚시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제주도로 이주를 했다. 작은 집을 얻어 아내는 민박을 운영하며 남편은 갈치잡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다.
부부의 아프지만 너무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왜 두 분의 시선이 독특하고 애매했는지 바로 이해되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손님이 놀랄까 봐 일부러 얼굴을 돌리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던 남편, 이미 시력 대부분이 상실되어서 상대와 시선을 맞추는 게 불가능했던 아내. 먼 곳까지 찾아와 준 손님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해 주는 두 분의 마음 씀씀이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한편으론 근거 없는 불안으로 보낸 어젯밤이 부끄럽기도 했다.
저녁 내내 남편은 아내를 위해 고기를 맛있게 구워 가장 맛있는 부위만 접시에 놓아주었다. 이렇게 차별해도 되냐는 농담에도 꿋꿋하게 제일 이쁜 사람이 먹어야 한다며 연신 아내를 챙기느라 바빴다. 그런 남편의 온전한 사랑에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아내의 얼굴은 정말 예뻐 보였다. 그 둘의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내 마음까지 멘도롱 또똣해졌다.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다.
* 멘도롱 또똣은 제주도 방언으로 미지근하게 따뜻하다는 뜻이지만 ‘기분 좋게 따뜻하다’라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