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처럼 찾아온 사랑을 대하는 법
어느새 숨길 수 없는 새벽의 기척이 희미한 새소리와 함께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난 대충 입은 옷에 간단한 짐을 챙겨 가족들이 깰까 봐 조심스럽게 창문을 뛰어넘었다. 이번 여행 콘셉트는 ‘창문 넘어 도망친 딸’이었다. 여느 날처럼 “엄마, 나 여행 가”라는 여섯 음절의 짧은 쪽지로 부재를 알리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홀로 여행의 끝없는 갈망은 오로지 결승점을 향해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내 이성과 감성을 모두 지배하고 있었다.
첫 기차가 들어오는 새벽의 플랫폼은 낯설고 설레는 순간이었다. 목적지도 이유도 없었지만 단 하나는 분명했다. 오늘, 어딘가로 떠나야만 한다는 것. 그렇게 나는 새벽 기차에게만 비밀을 공유한 여행을 시작했다.
그날도 짧은 여름옷 한 벌에 가벼운 배낭을 어깨에 메고 시작했는데 친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이름도 낯선 여름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살면서 겪은 여름 태풍이 뭐 한두 개였나. 이 정도에 여행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이런 날씨에도 여행 갈 수 있는 거야?’ 라며 불안한 눈빛을 잠재우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 베테랑 여행전문가만 믿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결국 우린 억수같이 퍼붓는 비속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의 태풍은 창문을 뛰어넘어 도망친 딸의 객기도 날려버리는 위력이었다. 세찬 바람과 함께 땅속 깊이 내리 꽂히는 빗줄기는 세상을 다 뒤집어 놓으려는 듯했다. 길은 다 끊겨 버리고 기차는 탈선을 했으며 통신마저 완전 불통,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문명의 이기들을 다 포맷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여유롭던 내 표정에 조금씩 불안이란 녀석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유치원 아이들 소풍 갈 때처럼 꼭 잡은 친구의 손에서는 긴장이란 땀이 고였다. 어쩌지? 여기서 여행을 끝내야 하나?
우선 부모님에게 안전을 알려야 했다. 태풍 따위에 흔들릴 딸이 아니다는 걸 알려야 할 도구, 바로 공중전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다들 장렬히 전사라도 했는지 살아 있는 공중전화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끝없는 임종소식에 우리의 심장도 점점 멎어갈 것만 같은 그때,
“여기요, 여기는 살아 있어요” 까무잡잡한 피부에 유독 큰 눈이 반짝이는 낯선 남자의 얼굴이 갑자기 나타났다.
“얼른 해봐요. 아까부터 전화기 찾아 헤매는 거 봤어요. 우리도 간신히 여기 찾았어요”
“우와, 살았다. 정말 감사해요.
그와의 만남은 늦은 8월의 뇌우처럼 강렬했다. 온 도시가 잃어버린 세계 아틀란티스처럼 물속에 잠겨가고 있을 때 회오리치는 물살 속에서 영웅처럼 앞에 나타났다. 나와 친구 그리고 영웅과 친구, 우리는 정신없이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텅 빈 카페에 앉아 있었다. 창 밖은 번개와 천둥의 교차로 순간순간 낮처럼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긴 침묵을 깨고 내가 입을 열었다.
“ 난 바다 보러 갈 거야” 창 밖만 응시하던 여섯 개의 눈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너 지금 밖의 상황이 어떤지 보고 있으면서 그런 말 하는 거야?” 친구는 내가 정신이 나갔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 비 온다고 못 가고 바람 좀 분다고 못 가고 그러면 언제 여행 가냐? 내가 언제 날씨 좋을 때만 다닌 것도 아니고 난 갈 수 있어. 아니 우린 갈 수 있잖아~” 내 억지와 한도초과 된 객기에 친구 얼굴이 점점 흙빛으로 변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설득되지 않는 고집에 내려진 최종 결론은
“우리가 데려다 줄게요. 바 다”이었다.
우리는 다음 날 바다를 향해 떠났다. 대중교통은 이미 다 마비가 되었기에 남자의 친구가 운전하는 차로 비장한 각오를 하고 출발을 했다. 무슨 바다를 보러 가는데 비장까지 할 게 있으냐마는 그때의 상황은 비장과 긴장과 환장까지 모든 걸 각오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뉴스 속보에서는 어디에 산사태가 났다, 어느 구간까지 도로가 통제되었다, 교량의 일부분이 침수가 되었다 등 끝없이 긴박한 상황을 알려대고 있었다.
말 그대로 고난의 길을 함께 하는 여정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이 이렇게 긴박하기도 하고 또 위험하기도 한 여정을 함께 하다 보니 왠지 모를 유대감과 서로에 대한 의지와 믿음 뭐 이런 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끝없이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를 함께 맞고, 푹 파인 웅덩이를 같이 건너고, 갑자기 끊겨버린 길에서 후진을 해야 하는 차를 위해 “왼쪽으로 조금만 더, 아니 이번엔 오른쪽으로”를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조금씩 무장해제 시키는 마법은 그 사람의 친절한 전완근이었다. 차가 급커브를 돌 때마다 함께 휘청였지만 그 순간마다 그의 팔이 나를 감쌌다. 놀랄 만큼 부드럽게 하지만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단단하게, 마치 폭풍 속에서도 나만은 지켜내겠다는 사람처럼. 그럴 때마다 나는 바깥의 거칠고 험한 폭우와 바람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손길 안에서만큼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따뜻했다.
바다에 도착했을 때 세상은 잠시 조용해졌다. 폭우 속을 뚫고 왔던 길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잔잔한 파도가 눈앞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며 그와 함께 도착한 이 순간이 최종 목적지가 아닌 무언가의 시작점이라는 걸 느꼈다. 옆에서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존재가 바다보다 더 크게 밀려왔다. 숨 막히게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그 끝에 조심스럽게 ‘사랑’이란 단어가 떠 올랐다.
하대위. 그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그가 나를 어떤 호칭으로 불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이름이었을까? 아니면 가끔 여행하며 흐르는 인연들에게 말해 준 또 하나의 별칭이었을까? 사실 나 역시 그를 하대 위라고 불러 본 적은 없다. 그의 친구가 그렇게 부르는 걸 들었을 뿐. 나의 하대위는 바다를 향해 떠나는 그 순간부터 온갖 바다내음을 다 묻히고 돌아올 때까지 지극히 아끼고 보살펴주었다. 거센 바닷바람에 대항하지 못하는 짧은 팔 티셔츠 위로 그의 긴 점퍼가 입혀졌고, 갈망하던 바다의 온갖 흔적들이 달라붙어 있는 신발을 섬세하게 털어주었다.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데? 뭐 나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야?” 라며 억지를 꾹꾹 담은 볼멘소리에도 씩 웃으며 그저 머리 한번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그는 말수가 적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보단 필요한 것, 원하는 것을 먼저 알아차리고 묵묵히 내 앞에 가져다 놓는 사람이었다. 옆에 서기보다 뒤를 조용히 따라와 주었던 사람, 밑도 끝도 없는 신산한 여행자의 마음에 울컥할 때면 말없이 어깨를 안아주던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하대위라는 호칭 하나였지만 그를 향해 달려가는 마음을 제어하지 못할 만큼 그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머뭇거리지만 조금씩 뜨거워지고 있는 그의 마음도 분명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나도 하대위도 입 밖으로 사랑이란 단어를 절대 꺼내지 않았다.
바다에, 그도 내 마음도 두고 돌아왔다. 왜 시작도 못하는 어설픈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에게 전달된 그의 마음. 너를 향해 달려갈 수 없다는 무언의 눈빛이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여전히 흔들리는 나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잡아 주는 사람이었지만 난, 숨 가쁘게 타오르는 사랑의 호흡을 단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들켜버리고 싶은 내 마음을 끝까지 모르는 척하는 모습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픈 시간이 한없이 흐르던 어느 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를 보러 오겠단다. 한껏 요동치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고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설렘과 불안이 함께 밀려들었다.
그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들려주었다. 그는 아픈 사랑의 기억을 지우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주 많이 사랑했던 여자와 이별을 했고 깊은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 속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오래도록 마음을 다했던 사랑의 아픔은 쉬이 치유되기 힘들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힘겹게 방황하고 있었다. 그 비 내리는 도시에서 나를 마주친 순간에도 그는 절망 같은 침잠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아프게 한마디 한마디 말을 이어 나갔다.
“난 아직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넌, 더 따뜻한 사랑을 받아야 해. 누군가의 과거에 갇힌 사람 말고 너만 바라보는 그런 사람한테……”
그의 말은 가시가 되어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그를 이토록 아프게 만든 사랑에게 저주를 퍼붓고 싶었다.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 아픈 내 사랑을 위해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 손을 뻗기만 하면 만질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감전이라도 된 사람처럼 손끝하나 움직이지를 못했다. 마지막 자존심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던 건지 희미하게 웃음을 띄울 뿐이었다. 그는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고 그렇게 돌아갔다.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하는 지독한 사랑의 구렁 속으로.
내 사랑은 마치 예고 없이 찾아온 교통사고 같았다. 평온했던 일상에 갑자기 들이닥쳐,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그 충격은 강렬했고 짧은 시간에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제법 오래도록 이루지 못한 사랑의 열병에 끙끙대며 아파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나 제법 시간이 흐른 후 알게 되었다. 그는 나를 향한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다. 어쩌면 사랑은 감정보다 타이밍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랑이란 반드시 이어져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어떤 사랑은 짧게 머물렀어도 우리의 마음에 아주 오래도록 머무른다는 것을.
비가 올 때면 그날의 풍경과 그 사람을 떠올리곤 한다. 이제는 아프지 않게, 조용히 마음 한 구석에서 꺼내보는 사람. 그런 사랑도 있는 것이다. 서로의 시간이 다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그때는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