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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독립을 위하여

by 발견하는 상담사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녀에게 어떻게 지냈느냐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씻지도 않고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였다.

어쩌고 있었길래 아무것도 안 했다고 말하냐고 묻자

“아무것도 안 했어요.”라고 같은 대답을 한다.


안 되겠다 싶어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안 한 거 말고 한 일은 뭐가 있어요?"

침묵.

“이불에서 안 나오고 눈만 뜨고 있었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그녀가 말한다.

“이어폰 꽂고 음악 들으면서 누워있었어요”




머릿속에 불이 반짝 들어오는 순간이다.

이 순간을 지나치지 않고 잡아야 한다.

숨을 깊게 들어마신 후 물었다.


“그리고?”

“엄마 영양제 챙겨드렸어요.”

“그리고?”

“설거지도 했어요.”

“그리고?”

“아빠 밥도 차려드렸어요.”

“한 게 많은데?”


그녀가 빙긋 웃는다.






자신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고, 자신이 바보 같다고 말하던 그녀다. 그래서 직장도 구하지 못하는 거라 믿고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면접에서 떨어지는 걸로 매번 확인한다.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은 할 줄 아는 게 없고 바보 같은 자신을 상기시키게 하는 것만 묻는다.

“씻었어요?”, “운동했어요?”, “취직했어요?”

이런 질문에 그녀는 "안 했어요."라고 답한다.

또 한 번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 같은 자신'을 상기한다.



그리고 그녀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 같은 사람'이 되어 버린다.






유일한 가족인 부모는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으니까 결혼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계속, 내내... 정신병은 유전되니까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단다. 그러니 남자를 만나면 안 된단다. 그래서 자취는 허락하지 않는다. 자녀의 성장과 독립을 막는 전형적인 부모 유형이다.




그녀가 마지막 시간에야 겨우 말한 자신의 소망이 있다.


"남자친구와 여행을 가고 싶어요."

"취직해서 혼자 살고 싶어요."

"그런데 안될 거예요. 엄마가 말할 상대가 없어요."



그녀가 치료되려면 부모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커버이미지 : 작가 rawpixel.com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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