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에 끄적거려 논 지난해 이맘때의 글을 펼쳐 본다.
노트의 제목이 ‘자기 분석’인 만큼 지극히 사적이고 누구에게도 읽힐 일이 없을 거라는 가정하에 쓴 글이다. 몇 년 동안 써 왔지만 펼쳐서 읽지는 않았었다. 그러다 매년 이맘때 반복되는 나의 감정이 궁금해지면서 이맘때의 글을 찾아 읽기로 했다. 글을 읽으면서 반복되는 것 같다는 나의 예상은 들어맞았고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스럽다.
2023년 1월 16일
나를 압박하는 일이 없을 때 찾아오는 이 불안감.
연말과 연초의 반복되는 이 기분.
여전하다.
나의 선택을 선뜻 믿을 수가 없어 무엇을 결정하고 실천하기가 이리도 어렵다니…. 주어진 것의 실천력과는 확연히 다르다.
나의 결정과 실행에 가슴에 깊이 박혀있던 ‘쓸데없는’이라는 말이 자신을 알리듯 마음에 진동이 인다. 그리고 좌절감, 모욕감, 수치감, 죄책감, 열등감이 진동에 반응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이런 나의 자괴감을 감추려 아는 척, 잘난 척, 센 척, 고상한 척으로 나를 가리고 치장하느라 힘들었다.
나의 아픈 상처가 수면 위로 떠 올라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하자 고스란히 가슴에 모여 뭉쳐있다. 그게 덩어리로 느껴지기까지 하면 꽤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우울해지고 무력해지면서 게을러지면서 현실을 회피한다.
나를 믿고 신뢰한다고 괜찮다고 나는 언제쯤 나에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 마음이 평온하기를 바란다고 나에게 왜 위로하지 못할까?
여전히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을 방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인정하지 않았어…. 알고 있는 것과 인정과 수용은 다르다. 난 알고는 있다. 그래서 여전히 아버지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이내 좌절하고 두려워진다.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이 맞을까 봐…. 내가 이겨내지 못할까 봐.
매번 이러한 상념으로 시달리는 걸 알고 인정도 하였지만 나를 수용하지는 않았나 보다. 정기적으로 앓는 생리통만큼도 봐주지 않았다.
나는 때때로 또는 정기적으로 그 상처들이 드러나고 아픔이 느껴진다. 가슴이 답답하고 두렵다. 두려워하는 일은 일어나지도 내 잘못이 아님을 알지만, 안다는 것만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건 안 되나 보다.
여전히 상처가 남아 있고 상처가 건드려지면 아프다.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아픈 나에게 필요한 건 위로다. 괜찮다고, 지나갈 거라고, 잘 참고 있다고.
여전히 아버지에게서 분화되지 못했다는 걸 인정하자. 내 마음에 박혀있는 아버지의 소리가 나를 괴롭히고 있음을 인정하자.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음을 인정하자. 그러고 나면 이 아픔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마주해야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낼 수 있다.
나에게 위로를 전하자. 애쓰는구나, 많이 힘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