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

언젠가 다시

by 이윤슬

이태원에서 꼬박 밤을 새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침 8시를 조금 넘어선 시간이라 역에는 출근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지하철 개찰구는 쉬지 않고 사람들을 뱉어낸다.

다들 자신만의 아침을 맞기 바쁘다.

가는 사람은 많은데 오는 사람은 적다.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데 나를 포함한 몇 명만 여유로워 보인다.


문득 에스컬레이터를 쳐다본다.

사람들의 표정은 대게 무표정하고 어둡다.

간혹 짜증나 보이는 분들도 계셨다.


나 역시 걸을 때 항상 웃지는 않는다.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만화 속 캐릭터 정도가 아닐까.


어른들은 즐기며 살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매일 즐길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타협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어차피 그 일을 업으로 삼을 때까지 기다릴 성정도 아니니, 일단 전공을 살려 어디든 취업하고 생각했다.그 덕에 일을 시작할 때 내 적성에 맞을까 걱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성취감도 있었다. 나만 잘 적응하면 되었다.




출근 길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잘 꾸며진 산책길을 따라 주변에 나무들과 자연을 보며 출근하는, 사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그 길을 좋아했다.

가끔 시냇물을 따라 오리 떼가 지나가고, 해가 뜨는 걸 보는 그 시간이 좋았다.


일은 힘들었지만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

다 같이 야근하는 날엔 몸은 힘들어도 종종 수다 더 떨고 가끔은 미치기도(?)하고 꽤 즐거웠다.

퇴근 후 함께 술을 마시며 회포를 푸는 것도 좋았다.

인복이 많았다.




걸어서는 출근 불가능한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아침의 즐거움은 사라졌다.


회사의 일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 팀원 모두 야근은 물론 주말 출근이 일상이 되어가며 동료들끼리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정을 붙인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일이 더 늘어났다. 일손이 부족하니 사건사고도 많아졌다.


이대로 있다가는 어딘가 고장 날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어딘가 이미 고장 난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있는데 심장은 빨리 뛰었고, 손이 가끔 떨렸다. 언니는 그만두라고 해주었다.


누가 요즘 애들은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하는 걸까.

우리에게 야근과 주말 출근이 일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일은 끝나지 않았고 모두 지쳐갔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황폐해져 미래를 고민하는 시기가 늘어났다.어딘가 툭 끊어질 것 같았다.



퇴사하고 3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그 사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여전히 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살지도 않는 집은 월세가 나가는 중이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다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직은 버틸만하다.


무슨 일을 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여전히 내가 뭘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 다시 일을 시작한다면..


적어도.. 예전에 내가 그랬듯 출근길 소소한 행복을 만들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

나는 인복이 좋으니까.


힘든 일도 분명 많고 또 짜증도 많이 내겠지만,

그보다는 퇴근하고 할 무언가를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그런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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