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2차원의 삶

- 대문과 마당이 있는 집이 사람을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by doctor flotte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저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단지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제는 시간이 흘러 그 필요가 삶을 잡아먹고 있는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이 시대 우리의 집. 집이 아니지만 집이 되어 버린 집, 집이 아니지만 모두가 원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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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조끼를 입은 아줌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봤다. 검은 모자를 쓴 아저씨가 핸드폰을 보며 걷다가 그 위층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봤다. 바람이 불고 나무가 흔들린다. 어디에선가 이삿짐 사다리차가 후진하는 소리가 들린다. 삐, 삐, 삐. 아래 관리실 앞에서는 할머니가 안전봉을 잡고 옆걸음으로 조심히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계속 저 풍경을 바라본다. 하늘까지 막아버린 저 마음에 들지 않는 네모난 풍경은 층층이 쌓아 올릴 수 있는 구조로 최대한 공간을 활용하려다보니 만들어진 ‘단순한 생각’의 결과물이다. 그 이상 아무것도 나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


왜 저기에 사람들은 사는 걸까? 왜 저기에 사람들은 살려고 하는 걸까? 자기가 사는 집이 안전진단 D등급이 나왔다고 서로를 축하하는 ‘경축’ 플랜카드가 여기저기 걸리고 있다. 이제는 무슨 주민동의서를 받는다고 안내방송에 지나가는 길마다 천막을 치고 서명을 받고 있다. 재건축 지원금을 받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집을 부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D등급 아파트에 살게 된 이들은 모두 웃고 있다.


예전 가난한 우리집에도 대문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초록색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몇 발자국 밖에 안 되지만 시멘트 바닥이 갈라진 작은 마당도 있었다. 대문은 아파트 현관이 아니다. 집에서 대문은 바로 앞에서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던 특별한 장소였다. 대문은 내 집이면서도 내 집이 아닌 곳이었다. 거기는 아파트 현관처럼 그냥 안과 밖을 빈 틈 없이 가르는 곳이 아니다. 어린 시절 친구가 놀자고 내 이름을 크게 부르던 곳이다. 그럼 담을 넘어 마당을 지나 들리는 그 반가운 목소리에 밥을 더 먹으라는 엄마 말도 듣지 않고 나는 친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면 친구가 나타나는 마법 같은 문이었다. 그리고 이 문은 내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까. 그 마당은... 삐걱거리는 대문소리, 하늘이 보이고 별이 보이던 우리집 마당.


아파트는 ‘평면도’ 위에서 사는 삶이다. 납작한 2차원에서 사는 것이다. 결국 넓은 미로에 불과한 아파트에서 삶도 생각도 2차원에 맞게 움직인다. 아파트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아파트 크기, 브랜드, 집값, 재개발, 대출이자... 기회만 되면 언제든 팔아치우고 떠날 곳은 집이 아니다. 얼른 부서지고 없어지기를 바라는 곳은 집이 아니다.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우리들의 공간, 대문과 마당이 없으니, 우리는 꽉 닫은 아파트 현관문을 앞뒤로 내 공간과 저들의 공간을 나누게 된다. 대문이 없으니 대문과 대문 사이 길도, 계절마다 날씨마다 길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도 없고, 그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동네’도 없다. 동네가 없는 집은 집이 아니다. 우린 그냥 크고 넓은 탑 속에 사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정들지 않는 저 탑을 집이라고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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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이 편하고, 상가도 있고, 보안도 잘 되고, 그냥 살기만 해도 언젠가 집값이 올라 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이런 것들에... 의미는, 인간이 사는 집의 의미는 그럼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내가 살던 어린 시절 마당과 대문이 있는 집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집에 있어도 동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계단에 앉아 비와 더위와 바람을 보고 맞으면서 살던 하늘이 덮고 있던 내 집이 지금 내 마음이 된 것이다. 대문과 마당이 있는 집이 사람을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건 크기에 대한 이야기도, 집값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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