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라는 말은 어쩌면 아주 간단한 뜻일 지도 모른다
한참 게임을 하다가 내 눈치를 본다. 약속한 30분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럼 아이는 어쩔 수 없이 게임을 그만두고 아쉬운 듯 소파로 가서, 앉은 건지 누운 건지 아무튼 불만이 가득한 이상한 자세로 애먼 벽지를 손톱으로 긁기 시작한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데, 갑자기 심심해진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이에게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심심하게 있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심심해 하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임하고 싶으면 수요일 수학 숙제 절반만 미리 하고 또 30분 게임해, 알았지!’ 아직 서운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수학 숙제를 할 생각이 없는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나는 자석처럼 다시 방에 들어가 책상에 앉는다. 급하게 해야 할 일은 없지만 그냥 그렇게 일단 책상에 앉아 있는 게 나는 좋다. 다시 집중해서 이제 무얼 할까 생각하고 있을 때 노크 없이 방문이 조용히 열린다. 아이가 머리를 먼저 내밀고 나를 바라본다. 아무 말 없다. 심심하다는 말이 얼굴에 가득하다.
내가 살짝 웃으면 아이는 허락받은 걸 알고 방에 들어와 내 무릎과 책상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다. 그렇게 내 위에 앉아 노트북을 마음대로 두들긴다. 쓰던 글이 엉망이 될까, 창을 닫고 빈 화면을 띄워놓는다. 그럼 아이는 마음대로 키보드를 누른다. 그러다가 한 글자를 계속 누르고 있어 커서가 달려가듯 화면을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한 줄씩 채워가면 아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돌아 보고 살짝 웃는다. 하지만 아이는 다시 깨닫는다. 심심하다는 걸. 이제 말을 한다. 얼굴이 밝아졌다. ‘아빠, 이제 우리 뭐 할까!’ 나를 친구 대하듯 하는 이 말이 왠지 좋다.
정말 가까운 사람들은 항상 ‘같이 심심해 하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와 논다는 건 꼭 뭔가 정해진 걸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노는 날, 아침을 먹으면 매일 봐도 반가운 친구네 집으로 달려가서 대문에 대고 그냥 친구 이름을 크게 부른다. 안쪽에서 뭐라고 대답하는 친구 목소리가 들리고 곧 친구가 나온다. 그럼 우리는 이제 신나는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우리 이제 뭐하고 놀까!’ 이 말은 우리는 오늘 하루 종일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얼 하든 하루 종일 같이 있겠다는 짧은 약속이었다. 그래서 그 말만으로 충분했다. 대학시절도 그랬던 것 같다. 한참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있으면 주말에 그냥 시내에서 만났다. 심심해서 그냥 여기저기를 같이 걸어다닐 뿐이었다. 그러다가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일단 만나서 함께 심심해 할 수 있다는 건, 하루 종일 같이 심심해 할 수 있다는 건 그 두 사이가 ‘친구’라는 뜻이다.
친구라는 말은 어쩌면 아주 간단한 뜻일 지도 모른다. 할 게 없어도 그냥 만날 수 있는 사이, 만나서 같이 심심해 할 수 있는 사이, 심심하다고 먼저 떠나가지 않는 사이. 저녁노을까지 같이 심심해 할 수 있는 사이. 카톡 친구목록에는 100명의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중에 한 명이라도 지금 ‘심심하다. 그냥 만나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 만나려면 이유를 만들어야 하고 시간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진짜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건지, 괜히 그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건 아닌지 한 번 더 생각도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몇 사람에게도 나는 그렇게 조심스럽다.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그 추억들이 그립다. 나한테 아무렇지 않게 ‘이제 우리 뭐할까!’라고 말해주던 친구들. 심심해서 행복했던 친구들. 저 사람의 심심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그만 일어서자고 내가 먼저 얘기해야 하나’라고 속으로 적당한 타이밍을 찾을 필요가 없는 진짜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