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음악과 한 책이 연결되던 내 시절

- 런닝 바람의 배 나온 아저씨가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있다

by doctor flotte

음악을 들으면 어떤 책이 생각날 때가 있다. 어려서부터 좋은 책을 찾으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이고 싶었다. 음악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과 독서실에서 하루를 끝내고 늦은 밤 들어와 내 침대에 눕기 전 나는 쇼팽을 들으며 랭보를 읽고 까뮈를 읽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떤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하지 않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 내가 처음 1년동안 한 일은 세계문학전집을 1권부터 읽어나가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권씩 나는 아무도 시킨 적이 없는 명령에 복종하듯 그렇게 책을 읽었다. 약간의 부작용이 있었는데, 그 결과 책들의 내용이 겹치고 책은 읽었지만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투르게네프의 책 <첫사랑>을 나는 분명 읽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침에 집에서 학교 가는 전철 1시간동안 그리고 학교에서 집에 오는 전철 1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 꼭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요즘엔 옛날 배경의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묵직한 삼각기둥 모양의 MP3플레이어를 주머니에 넣고 음악을 들으면서 말이다. 마치 갑자기 코를 스친 어떤 냄새가 순간 나를 예전 어떤 기억으로 이끄는 것처럼, 때로 어디선가 들리는 음악이 지금도 나를 그렇게 기억나지 않는 어떤 세계문학책으로 돌려놓는다.


음악과 책이 이렇게 마구 뒤섞이던 시절 내 주머니에는 천원짜리만이 있었다. 흰 티셔츠 몇 개를 매일 갈아입었고 청바지는 땀이 나면 말리면 그만이었다. 바닥이 납작한 스니커즈 운동화는 지저분할수록 마음에 들었다. 칭찬인지 모르겠지만 한 후배는 그런 나한테 ‘선배님은 도도한 한 마리 학’ 같다고 했다. 나는 세상에 함부로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한 음악과 한 책이 연결되었던 시절 나는 가진 것은 없지만 충분히 ‘기품’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기억이 20년 전의 일이다. 검은 머리와 흰머리가 적당히 섞여 있는 지금 나는 쓸데없는 고집만 부리는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속으로 무시한다. 어쩌다 얻게 된 사회적 지위 안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잘난 척을 한다. 혼자 있을 때는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도 말이다. 그러다가 요즘, 세상에 아무것도 기대거나 바라지 않아 더없이 당당했던 그 시절의 도도한 한 마리 학이 되고 싶었다. 나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제목만 알고 읽지 않았던 세계문학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얇은 책이어서 바빠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 점점 빠져들 때쯤 나는 예전처럼 이 책과 연결될 수 있는 음악을 찾기로 했다. 나중에 어디에선가 이 음악을 들으면 다시 이 책이 생각날 그런 음악이 필요했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3악장이 어울렸다.


내가 왜 이 음악을 선택했는지는 이 음악의 첫 부분을 들으며 이 책의 첫 세 줄을 읽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은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이다. 이 음악을 듣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청바지 하나로 충분했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요즘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글의 스타일은 오히려 오래된 내 물건을 다시 찾아보는 것처럼 반갑게 느껴졌다. 한없이 섬세하고 한없이 지적인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오래전 내가 음악과 함께 자주 빠져들던 그 문학책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책과 음악 속에서 세상 도도한 삶을 살고자 했던 내 젊은 시절의 괜찮은 반항심도 다시 살아난 것 같았다. 나는 원래 문학책과 음악만으로도 충분했던 사람이었다. 그랬을 뿐 아니라, 지금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누구한테 보여줄 것도 자랑할 것도 아니지만, 조금 더 내 원래 모습을 되찾고 싶다. 런닝 바람의 배 나온 아저씨가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있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5화납작한 2차원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