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을 살다 가도록 돕는 과학기술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고 기억력을 확대하고 원하는 것들을 알아서 만들고 제공해 주는 AI에 대한 관심이 무서울 정도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말 한마디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마치 그가 인류에게 미래를 선물해 줄 것처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쪽 전문가가 아니니 지금 어떤 관련 기술들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말처럼 앞으로는 과학기술이 단지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게 될 거라면 그쪽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도 발언권은 있는 것 같다. 한 가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과학기술로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능력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
그들은 마치 지금 우리 인간의 몸을 ‘1세대 구형모델’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과학자들이 나서서 빨리 업그레이드 해야 하는 폐기 직전의 구식인 것이다. 인간의 갖가지 능력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나열하며 앞으로 수십 년 내에 그런 능력들이 또 얼마나 ‘증강’될 지 기대를 심어준다. 그들 앞에서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숲속에서 세수도 안 하고 동물소리를 내며 뛰어다니는 ‘미개인’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순수하고 깊은 눈을 가진 미개인이다.
인간의 모든 능력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의 한계, 생각하거나 기억할 수 있는 것의 한계, 뛰거나 움직이거나 하는 한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한계가 우리를 불편하게 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인간에게 한계가 있다는 것은 사실 그 뜻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어떤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어떤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정하고 실천하고 성취하고 기뻐하고 후회하고 슬퍼할 수 있는 것이다. 한계가 없다면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내 능력에 한계가 없고, 시간 공간의 한계가 없다면 우리는 그만큼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정말 무한한 물리적인 능력과 사이버 공간 속에 동기화되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의 삶은 실제로는 완전히 무의미해질 뿐이다.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라는 한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한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드 보부아르의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지루한 책이긴 하지만 꼭 읽어야 할 책이다.
기능의 한계와 기술의 한계는 개선의 대상이겠지만,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한계는 분명 그보다 복잡하고 특별하다. 그것은 필요나 상황에 따라 개선될 필요가 있겠지만, 완전히 극복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바다 거북이처럼 400년을 사는 게 아니다. 나는 내게 남은 40년의 시간을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며, 자연스러운 노화와 질병은 죽음과 친해질 기회를 줄 것이니 분명 괜찮을 것이다. 미개인인 나도 아는 것을 그들은 왜 모르는 것일까.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우리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행복하려 하고, 행복한 추억을 아이에게 남겨주려 하는 것이다. 내 삶의 한계는 내 삶이 무의미해지지 않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조건이다. 무한은 이것을 파괴한다. 인간의 주어진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다 가도록 돕는 과학기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