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데없이 깊이 생각하기 보다는
나는 우리 생각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도취 속에서 삶을 미화하거나 함부로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 삶의 모습과 움직임을 우리가 그때그때 알게 된 만큼 냉정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겸손이 아니라 정확함이다. 사실 철학도 그렇다. 정확함은 단지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글은 심지어 주제나 분량과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누가 썼는지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인간이고 인간의 희로애락을 어느 정도는 유사하게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그저 체온을 측정하듯 그때그때 내 체온의 숫자만 기록하면 되는 것이다. 어제의 체온이 36.5도였고 그래서 그렇게 썼고, 오늘도 체온이 36.5도여서 그렇게 썼다면 나는 아무 의미 없이 똑같은 숫자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어제 내가 본 삶의 모습을 흔들림 없이 보고 그대로 묘사한 것이고, 또 어제와 상관없이 오늘의 삶의 모습을 또 나는 흔들림 없이 보고 관찰하고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언어와 표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이렇게 체온을 측정하듯 글을 쓰는 일이 기적을 보고 기록하는 것 만큼 대단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슬쩍 던진 말이 아니라, 어리석은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칭찬을 받기에는 부족하고 부끄러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먼 미래는 아닌 그런 시간이 되면 보다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글에는 처음부터 멋있는 글이 없었고 부끄러운 글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36.5도라는 체온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체온은 우리의 체온이다. 우리가 체온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 몸이 가지고 있었던 그래서 진짜 나라고 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이다. 내 삶은 거의 항상 36.5도의 삶이었다. 그리고 그 체온은 평범한 온도도 아니다. 우리의 몸이 그런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먹은 음식이 적절히 소화되고 어느 정도의 열량이 체온으로 배출되어 내 몸이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내 몸 안에서 무슨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온도는 어쩌면 나를 살리고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온도일 수 있다. 따뜻한 체온은 내 몸이 내 몸 안에 있는 나쁜 것들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발생하는 생존의 온도이다. 물론 나는 이러석게도 이 사실을 모르고 산다. 그런데 괜찮다. 다 그런 것이다.
그저 대충 삶 속의 일화들을 기계적으로 기록하자는 것이 아니다. 글이 원래 그런 것이니 원래 그런 글을 탐구하다보면 지금 내 생각과는 다른 또 다른 의미의 좋은 글이 나올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이것을 내가 찾아낸 가장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글, 나쁜 글이 없으며 오직 가짜의 글 진짜의 글만이 있다는 사실에 머물러 있다보면 그 장소는 나에게 좋은 글을 선물할 것이다. 조금 어렵게 들리겠지만 우리가 써야 하는 것은 어떤 소재가 아니라 사실은 글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을 글로 쓴다는 것이다. 사실 어려운 말도 복잡한 말도 아니다. 자연은 모두 이미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철학자들처럼 왜 글을 써야하는지에 대해 쓸데없이 깊이 생각하기 보다는 글을 내 손과 발처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쓴다. 걷고 앉을 때 발을 쓴다. 손과 발은 나의 일부이지 칭찬받거나 자랑하기 위해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