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양심

- 단지 양심적으로 살자는 것이 아니다

by doctor flotte

그냥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은 어떤 일이 있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이렇게 생각해 버렸다. ‘어린애도 아니고 내가 왜 이런 걸 고민해야 되지? 그냥 하고 싶으면 해.’ 양심이란 건 너무 쉽게 던질 수 있는 것이어서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내 안에 있는 작은 양심을 따르는 건 마치 별것도 아닌 걸 눈치보는 것 같아서 싫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년인 나이에 약간 양심에 찔린다고 어떤 걸 하지 않는 건 유치한 일이다. 나는 내 양심 때문에 잠시 주춤했던 그 순간조차 그냥 웃기는 일이라고 넘겨 버렸다. 나는 그런 걸 어이없는 것으로 비웃어도 되는 다 큰 어른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또 나만 그런가, 어차피 다 그렇게 살 텐데. 그래도 약간의 양심은 있었는지 나는 그 짧은 시간에 혼자서 참 여러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양심이란 건 없는 것 같다. 문제는 바로 이렇게 양심이란 게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는 너무 순진하고 겁이 많아서 그랬던 것이고 커보니 그리고 살아보니 양심이란 건 없는 건 당연하고 애써 생각하고 지킬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지금 남아 있는 양심이란 그때 남은 흔적 같은 것이다. 양심적으로 순진하게 뭔가를 하다 보면 어쩌면 나만 손해보고 이용당할 것 같다. 어쩌면 사람들도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내 모습을 보고 비웃거나 뒤에서 놀릴 것만 같다. 살면서 양심을 지키는 건 바보 취급받기 십상이다. 양심이 없어도 건전한 내 상식과 처세술로 잘 살아갈 수 있으니 어린애 같은 약한 마음은 필요 없다. 아무도 안 보고, 큰 잘못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다.


사실 남아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뭔가 있다고 해도 너무 작아서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것 같다. 그런 별것도 아닌 게 자꾸 나를 신경 쓰게 하니 양심이란 게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양심은 그냥 귀찮은 것이고 모른 척하면 된다. 어딘가 버리고 싶다.


그런데 양심이란 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내 양심은 이 우주에서 ‘오직 나에게만 말한다’. 나만 들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린 시절에는 큰 목소리로 지금은 작은 목소리로 ‘어쨌든 아주 오랫동안’ 언제나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 내 양심은 나와 함께 시작되었고, 나와 함께 성장했고 나를 떠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이 작은 양심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오랫동안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온 것, 그동안 오직 나만을 위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나를 떠난다고 해도 결코 나를 떠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우리가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 각자에게 남아 있는 이 작은 양심은 어쩌면 수많은 시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실은 내가 완전히 버리고 싶지 않아서 그때그때 지키고 간직해 왔던 내 삶의 소중한 작품일 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는 살면서 나도 모르는 기특한 짓을 했던 것이다.


이 별볼일 없이 내 가슴 안에 남아 있는 이 작은 양심은 실은 내가 지키고 때로는 버텨온 진짜 내 마음일 수 있다. 내가 원했던 나의 모습이 그 안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순진한 나의 양심이 바로 나일지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아까 말했던 것들, 양심을 지키고 따르는 것은 여전히 나를 나이에 비해 순진하고 어리숙한 사람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나라면 적어도 그것은 내가 마음대로 무시하거나 없어지도록 놔둘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양심적으로 살자는 것이 아니다. 나의 양심이 곧 나의 마음이고 결국 ‘나’라면 그것이 좋든 싫든 내가 짋어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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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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