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글을 쓰지 않는다

- 왜 나보다 할 말이 많으면서도

by doctor flotte

더 자주 더 많은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나 자신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내가 스스로 약속한 A4 한 페이지조차 온전히 내 생각으로 글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용서하기 어렵다. 더욱이 철학자라는 내가 그런 삶을 산다는 것은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면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조바심에 글의 소재가 될 만한 일상의 순간들을 허겁지겁 훔치듯 주워 모은다. 일상의 조각을 억지로 뜯어내기도 하고, 남의 일상을 내 것처럼 슬쩍 가져오기도 한다.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허둥대는 것이다. 하지만 대충 되는대로 글을 쓰는 건 더 싫다. 안 하고 말지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다. 글이라는 건 이렇게 때때로 스트레스가 되어 일상과 뒤범벅이 된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계절이 지나기도 한다. 며칠 전까지 여름이었는데, 이젠 가을이 되어 버렸다.


스스로 정말 나의 생각을 만들어보고 나의 글을 써 보고 하는 일은 내가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산다. 그런 글들을 나중에 책으로 묶고 안 묶고는 두 번째 문제이다. 중요한 건 오늘의 생각을 하고 오늘의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일터가 멀어서 운전을 자주 많이 한다. 나는 한 시간도 훨씬 넘는 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린다. 그렇지 않아도 글을 못 써서 답답한 마음에 운전을 하는 동안에라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 같아 조심조심 핸드폰을 눌러서 녹음기능으로 녹음해 두었다. 또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운전 중에 핸드폰을 눌러서 다시 녹음을 했다. 그런데 조금 위험한 방법이다. 생각에 집중하거나 녹음을 하기 위해 핸드폰을 자꾸 만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차선을 밟고 있는 것이었다. 한 손과 시선을 딴 데 두고 있으니 차가 좌우로 조금씩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앞 차가 멈춘 걸 늦게 발견할 때에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위험해서 안 되겠다 싶었다. 글이고 뭐고 일단은 운전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하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마지막 여름 빛깔을 뿜어내는 나무들이 보였다. 늦여름 유난히 모양이 또렷한 하늘의 흰 구름들도 보였다. 끝나가는 여름을 느꼈고, 계절에 둔감하게 살아가는 요즘 내가 아쉽게도 느껴졌다. 한강보다 깨끗한 강을 지날 때에는 창문을 모두 열었다. 바람소리가 시끄러워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기분은 좋았다. 100킬로가 넘는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운전은 편안하고 안전해졌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이 싫었는데 다시 일 년이 지나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새삼 그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아, 계절은 글을 쓰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계절은 제 할 일을 한다. 땅속 매미를 불러내고 논에 물도 준다. 한 참 세상을 덥게 했다가도 선선한 바람으로 먼저 용서를 구한다.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계절마다 높낮이를 다르게 하는 예쁜 구름들도 다 계절이 하고 있는 일이다. 모두가 코를 골며 잠든 사이, 계절은 어둠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을 몰래 하고 있을까. 누가 보든 안 보든 말이다. 계절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을까. 세상 아름다운 꽃을 보고 세상 아름다운 노을을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절은 아무 글도 쓰지 않는다. 마음을 가다듬고 계절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겠다. 왜 나보다 할 말이 많으면서도 아무 글도 쓰지 않냐고 꼭 물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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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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