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은 마음대로 살아서 움직이기도 한다
‘기억’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마도 사전적으로는 ‘무언가를 경험해서 머릿속에 보존한 것’ 정도로 정의될 것이다. 시간을 내서 인터넷 사전을 찾아볼 필요도 없다. 나는 사전이란 것이 너무도 철학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 역시 그 정도 생각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배우거나 경험한 것을 잊지 않는 것, 대충 우리는 기억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적으로는 어떻게 될까? 여기서 ‘철학적으로’라는 말은 ‘실제로’, ‘정말로’, ‘우리의 삶이 우리에게 말하고 알려 주는 그대로’라는 뜻이다. 한 가지를 추가하자면 ‘철학적으로’라는 말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가 기억이란 것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나는 왜 또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기억이란 전혀 그런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기억을 단순히 그렇게 정의하거나 이해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철학자는 단지 가짜를 싫어할 뿐이다.
배우거나 경험한 것을 잊지 않는 것, 정말 그런 게 기억일까? ‘기억이 난다’거나 ‘기억이 없다’는 말만 보면 그런 것 같다. 잊지 않는 것, 그런 게 기억인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서서히 잊혀질 수 있기에 기억이 되는 것은 아닐까? 어떤 것이 기억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때로 처음의 강렬한 충격이 조금씩 조금씩 약해지고 잦아져야 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도 나이가 먹고 그동안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쉬운 말로 ‘먹고 살다보니’ 처음의 그 충격이 조금씩 잊혀 지면서 ‘기억’이란 것이 되는 것이다. 또는 이젠 잊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억이란 것도 있다. 누군가 우리에게 지난 일로 미안했다고 말할 때 우리는 실제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다 지난 일이잖아. 나는 다 잊었어’ 아직 분명 기억하고 있지만 이렇게 ‘잊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잊었다고 말해야 하는 기억’을 어떻게 사전 속 그 정의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실 기억은 단순히 옛날에 있었던 일도 아니다. 예전에 있었던 어떤 일이 기억난다는 것은 내가 예전의 그때로 돌아간다는 것이 아니다. 내 지난 기억 속의 그때와 그 장소라는 것은 사실 어디에도 없다. 예전에 왔던 곳을 다시 찾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사실 내 기억 속의 장소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해 내 기억 속의 장소를 만들어 냈던 곳으로 새로 온 것 뿐이다. 사실 우리가 지금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기억은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지금의 일’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처음으로 이런 내 감정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전을 비웃으면서 기억이란 것이 실제로는 무엇인지 얼마든지 다르게도 말할 수 있다.
기억은 데이터가 아니다. 우리의 머리는 몇 테트라 바이트 짜리 외장형 하드가 아니다. 경험한 것을 잊지 않는 것이 기억이라면 컴퓨터는 정말 기억력이 좋은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농담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실제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컴퓨터는 다 기억하는 것 같다. 그러나 기억이란 오히려 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억이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컴퓨터처럼 모든 것을 다 잊지 않고 처음 경험 그대로 다 기억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기억력이란 것이 자꾸 뭔가를 깜박깜박 잊는다고 해서 컴퓨터에 비해 별볼일 없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인간의 기억력이 놀랍게도 컴퓨터 메모리의 용량보다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고 해도 컴퓨터보다 기억력이 더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의 기억은 처음부터 아무런 용량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인간의 기억력은 최첨단 과학기술에 의해 확장되거나 ‘증강’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기억은 서랍 속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서랍을 크게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억은 마음대로 살아서 움직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