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없는 것은 빵이 아니라 이야기
장호항에는 미안하지만 이제 나는 여름 휴가철에는 동해 장호항은 가지 않을 것 같다. 예전부터 ‘장호항’이라는 말을 들어서 한 번 가볼까 했는데, 너무너무 사람이 많다. 차로 들어가기도 힘들고 주차를 포기하고 그냥 나가려 해도 나올 수가 없었다. 마을은 여행객을 위해 이미 주차장을 확장한 것 같았다. 그런데 마을 입구와 출구 모두 마음대로 주차한 사람들 때문에 들어오는 차와 나가는 차가 뒤엉켜 버렸다. 통제하는 사람도 없다. 한여름 날씨는 정말 더웠다.
차 에어컨 바람을 쐴 생각으로 그냥 계속 아래로 운전을 했다. 울진까지 갔고, 고래불 해수욕장까지 갔다. 소용 없었다. 그냥 사람이 많았고 더웠고 지쳤다. 하루 실컷 고생하고 다시 삼척으로 향했다. 저녁이 되고 어두워졌다. 강원도 시골 고속도로는 조금 무섭다. 밤이 되면 산이 밤을 가려 밤은 더 크고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운전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아직 풀지 못한 질문이 가끔 떠올랐다. ‘문화제과점에는 왜 빵이 없을까?’ 꽈배기는 눈치 없이 맛있었다. 내가 먹은 꽈배기 중에 최고였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아내에게 문화제과점 꽈배기를 또 먹고 싶다고 했다. ‘맛집’이라는 곳 자체를 싫어하는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내한테는 놀라웠나 보다. 사실 꽈배기도 먹고 싶었지만 왠지 그 가게를 한 번 더 가야 할 것 같았다. 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가게를 다시 가고 그 할머니를 한 번 더 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문화제과점 문을 다시 두드렸다. 그리고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는 작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흰 비닐봉지와 그 옆에 할머니 은행 계좌번호가 왜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어차피 꽈배기만 사러 오는 사람들일 테니 그냥 문 열고 들어와 말없이 비닐봉지 한 개 챙기고 얼른 오천원을 계좌이체하고 나오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할머니는 필요 없을 것이다. 할머니도 그걸 알게 되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를 봐야 했다. 어제보다 크게 말했다. ‘어제 왔는데 꽈배기가 맛있어서 또 왔어요!’ 할머니가 지친 얼굴로 살짝 웃으면서 나오셨다. 아마도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셔서 피곤하신 것 같았다. 그래서 물어봤다. ‘일찍 나오세요? 새벽에 나오시는 거예요? 5시쯤 나오시는 거 아니예요?’ 할머니는 세월이 묻어나는 웃음으로 작게 말했다. ‘두 시, 두 시에 나와요.’ 두 시에 나오셨으면 지금은 보통 사람들 하루 일하는 시간을 이미 채우신 시간인 셈이다. 지치는 것이 당연했다. ‘가게 하신 지는 오래 되셨죠?’ 당연한 질문을 아무 생각 없이 했다. “39년.” 할머니 대답은 짧았지만 귀찮아하시는 말투는 아니었다. 할머니는 중년의 내가 귀엽다는 듯이 내 말은 신경쓰지 않고 장난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편안했던 짧은 침묵. 더 이상 아무 말도 필요가 없었다. “건강하세요.” 나도 짧게 인사를 하고 문을 나왔다.
빵집에서 다시 삼거리 쪽으로 조금 걸어가다가 오른쪽 길 끝에 큰 나무가 있는 걸 봤다. 시골 마을 초입에 있는 큰 느티나무 같았다. 그쪽으로 걸어가 나무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안내판을 읽었다. 나이를 알 수 없는 이 나무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죽어가던 나무를 어떤 스님이 살려냈으며, 신령한 기운으로 호랑이도 무서워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나무를 돌아섰다. 그런데 갑자기 빵집 할머니의 지친 미소가 생각났다. 이야기! 원래 이 동네의 문화제과 이야기! 이 동네 사람들이 케이크도 사고 빵도 사던 옛날 문화제과의 이야기가 더 이상 없었던 것이다. 맡긴 물건 찾아가듯 꽈배기만 달라는 사람들로 이제 문화제과는 빵을 살 수 없는 빵 가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없는 것은 빵이 아니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생활의 달인’이 싫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