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문화제과점에는 빵이 없는 것일까?
아내가 TV 없는 숙소를 정한 건 잘한 것 같다.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온 기분이 들었다. 여름휴가로 동해 삼척을 왔다. 차로 여기까지 온다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아내 말처럼 동해바다는 우리를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다만 문제는 요즘 아내가 저녁이면 기침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니다 싶어 다음 날 아침 숙소 근처 병원을 찾아봤다. 병원을 찾아갔더니 딱 시골 읍내 풍경이었다. 근덕면 읍내 삼거리에는 약국, 편의점, 호프집, 초등학교 교문, 농기계 수리점 같은 것들이 불규칙적으로 모여 있었다. 약국 위 2층에 있는 병원은 내가 생각한 그대로였다. 작은 병원에는 할머니들이 열 분정도 계셨고, 모두가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처럼 서로 얘기하고 있었다. 간호사는 모두의 딸이었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나는 잠깐 동네 구경한다고 나왔다. 1층으로 내려와 다시 삼거리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런데 저쪽 작은 길 안쪽에 무슨 제과점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나는 빵을 좋아한다. 반가운 마음에 찻길을 건너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빵집과는 거리가 있었다. 장사를 하는 집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예전에 문을 닫고 지금은 그냥 누가 마음대로 사는 곳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두들기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들었던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좁은 가게에 빵은 하나도 없었다. 전병 같은 옛날 과자가 시간과 상관없이 진열되어 있었고 오른쪽에는 이상하고 커다란 식물이 마른 채로 놓여 있었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한자와 어울려 무슨 한약집 같았다. 사람을 부르려고 인사를 다시 크게 했다. 안에서 키 작은 할머니가 나왔다.
‘여기 빵집 맞나요?’ 나도 모르게 오해할 만한 말을 하고 말았다. 아침부터 지친 표정의 할머니는 신경쓰지 않았다. ‘꽈배기 맛있어요, 오천원’ 할머니가 가리킨 것은 아까부터 있었던 하얀 비닐봉지들이었다. 한 봉지가 오천원이라는 것이었고 그 안에 이미 꽈배기가 들어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고르는 빵집이 아니었다. 아니 빵집이 아니었다. 꽈배기 전문점. 의심스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할머니는 벽 쪽으로 손을 가리켰다. 먼지 묻은 ‘생활의 달인’ 팻말이 높이 걸려 있었다. 그리곤 아직 힘든 목소리로 ‘맛있어’라고 말할 뿐이었다. 천성이 착하신 분 같았다. 힘든 표정에도 웃고 계셨다. 모든 분위기가 꽈배기를 사야 할 것 같아 한 봉지 샀다. 그런데 빵에 대한 아쉬움에 꼭 한 가지는 물어보고 싶었다. ‘할머니, 여기 제과점이면 다른 빵들은 없어요?’ 할머니는 아까보다 조금 더 웃으시며 대답하셨다. ‘꽈배기 때문에 빵 만들 시간이 없어요.’
‘저거 때문에 3년 정도 고생했어.’ 할머니의 이 말로, 순간 모든 게 정리가 됐다. 인심 좋은 할머니는 능숙한 PD의 말에 촬영을 허락했을 것이다. PD는 꽈배기가 맛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활의 달인’ 팀은 근덕면 꽈배기 맛집 한 편을 촬영했을 것이고, 방영 다음날부터 할머니는 주체할 수 없는 손님들을 맞이해야 했을 것이다. 바깥부터 사람들이 줄을 섰을 것이다. 들어오는 사람마다 꽈배기를 외쳤을 것이고 허락 없이 마음대로 인증샷을 찍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미소는 점점 지쳐갔을 것이다. 빵들이 있었을 텐데 핸드폰 들고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꽈배기만 찾았을 것이다. 오래된 빵들이 하나씩 버려지고, 만들어 봤자 꽈배기만 팔릴 테니 할머니는 빵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꽈배기만 팔아야 했고, 꽈배기를 더 많이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인사를 하고 빵집을 나왔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왜 문화제과점에는 빵이 없는 것일까? 나와서 간판을 다시 올려보니 분명 한 가운데에는 빛바랜 ‘빵’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그냥 문화제과가 아니라 문화‘빵’제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