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삶은 앞도 뒤도 미래도 없다
눈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우리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저기 내 앞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이란 것도 실은 대부분 눈으로 보았거나 보고 있는 것들이다. 세상엔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눈으로 핸드폰과 컴퓨터를 보고, 저기에 오는 버스를 보고, 노을도 보고 공부도 하고 눈으로 사람을 만나고 눈으로 여행을 떠난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잔다는 것이며, 그 뜻은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눈의 삶이다.
눈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 눈으로 충분한 것 같은 우리의 삶은 잘 생각해 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눈이란 것이 항상 저 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기에 정작 눈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은 쉽게 소외된다는 것이다. 단지 나의 모습을 눈으로 못 본다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재미있고 신나는 일들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삶의 태도 역시 거기에 맞춰진다. 거울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나를 눈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거울에 비춰진 나란 것도 결국 내 밖에 있는 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우리 사람의 움직임도 항상 앞을 향해 나아간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지 진화의 산물인지 모르겠지만, 두 눈은 정면을 향해 있고 우리가 몸을 움직이는 방향 역시 시선과 같은 정면이다. 우리 인간의 두 다리는 앞으로 걷거나 뛰는 데 특화되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눈은 저기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내 몸을 움직이는 두 다리는 그곳을 향해 앞으로만 움직인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 그리고 우리가 행동하는 모습이 모두 정면과 앞을 향해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의 생각이란 것도 편향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 계획하고 모레를 위해 계획한다. 1년 후와 10년 후를 계획한다. 내 뒤에 있는 과거가 아니라 내 앞 저기 어디엔가 있을 것 같은 미래만 보며 살아간다. 우리 각자만이 아니라, 이 사회가 이 나라와 세상이 모두 앞에 있다고 생각되는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 눈과 다리가 미래를 만들어 내고 정말 그런 미래가 있는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추월당할까 봐 허겁지겁 달려간다. 과학기술이야 그렇다 쳐도 ‘삶’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일까?
우리는 한 살에서 두 살이 되고 스무 살에서 마흔 살이 된다. 그럼 나의 몸은 앞으로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나는 그냥 제자리에 있다.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어두워지고 쉽게 몸이 다칠 뿐이다. 예전처럼 뛸 수 없고,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나 걸린다는 그런 병들에 내가 걸리기도 한다. 나의 키는 멈췄고 나의 몸은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않는다. 나는 가만히 있는 여기에서 나이 들고 병들고 늙는다. 나는 그리고 삶이라는 것은 내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전진해서 만나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룩한 업적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나는 과거보다 더 성장하고 성공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모두 벗고 있는 내 모습을 보자. 도대체 뭐가 과거보다 더 나아졌다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알몸의 상태로 갑자기 지구 반대편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동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나는 그저 더 늙고 지쳐보일 뿐이다.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않고 서 있는 그대로 나는 나이 들고 병들고 늙어가고 있다. 우리의 삶은 앞도 뒤도 미래도 없다. 불안한 마음에 나이와 날짜와 사회적 지위에 붙어 기생하듯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