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글

- 이만큼 살았다고 표시를 하는 정도의 글

by doctor flotte

사람들이 내 글을 손으로 만져주었으면 좋겠다. 만진다고 해서 만질 수는 없겠지만, 이 사람의 이 글이 불쌍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눈으로만 차마 읽지 못하고 엄마가 아이의 볼을 만지듯 내 글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져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런 경험이 당신에게도 있는지 모르겠다. 어떤 책이 너무 좋아서 손으로 책 표지를 자꾸 만지기도 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책을 펼쳐 책장에 손을 가만히 얹고 눈을 감고 바보 같이 글자들을 느껴본 경험 말이다. 무슨 욕심 때문인지 만져지지도 않는 글자들을 마치 점자를 찾아가듯 손가락 끝으로 인쇄된 글자들을 문지르고 더듬고 했던 경험 말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아무것도 느끼거나 알 수도 없으면서 안타까움과 그리움에 책장을 자꾸 부질없이 손바닥으로 문지르는 경험 말이다.


나는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글이 좋았다면 그냥 좋은 글이라고 말해주지 말고 진심으로 ‘수고했어요’라고 작게 하지만 조금 소리를 내어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 ‘수고했어요’라고 말해주는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내 글을 어루만져주고 내 글에 말을 걸어주면 좋겠다. 눈으로 읽고 덮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살다가 갑자기 그 책이 생각나 읽지도 않으면서 그냥 집어서 손으로 책과 글자들을 만지고 느끼고 싶은 책. 누군가 내 글에 대해서만큼은 꼭 그래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글은 삶에 가까이 있는 글이다. 우리의 삶이 그 모양이니 글도 어쩔 수 없이 그런 글. 글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삶에 너무 가까이 붙어서 삶의 딱지가 되어 버린 글. 그런 글은 나의 글, 누군가의 글, 어떤 유명한 작가의 글이 아니라, 한 살 한 살 나이 들어가는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사람의 글이 된다. 살아가는 인생이 어이가 없고,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 억울하기도 해서 쓰는 글이라면 그런 글이 될 것이다. 알려지고 싶고 글 자랑을 하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라, 삶을 버틴 만큼 쓰는 글. 머리나 가슴보다도 정말로 힘을 쓰며 버티고 있는 이 몸에서 시작되고, 몸이 하는 말을 받아 적는 글을 쓰고 싶다. 삶은 온통 몸이고 몸은 진실도 거짓도 아닌 사실이라고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몸은 생각이 시작되는 곳이 아니라, 생각이 살기 위해 뿌리를 두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만큼 성장한 내 몸은 나만의 몸 아니라, 이 세상 전부를 알려주고 있는 세상의 몸이다. 그래서 몸에 대해서만 생각해도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책도 필요 없고 누군가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늙고 병들고 지쳐가며 글을 쓴다. 그러니 수고했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 된다.


글이 몸과 하나가 되어 그 안에 체온을 담고 숨소리를 담고 심장 소리를 담는다. 그런 글이라면 우리는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만지고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볼을 대고 체온을 느껴야 한다. 그런 글은 글을 읽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고 그런 글을 쓰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 무슨 내용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수고하고 있고 그러니 수고했다고 쓰다듬어 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 글을 쓰는 방법은 우선 살아가고 살아가고 살아가는 것이다. 섣부른 조바심에 자꾸 글을 쓰지 않고 내 안에서 글이 반쯤 완성될 때까지 살아가는 것이다. 그때 글은 마치 대나무가 마디를 만들며 자라듯 삶에 마디를 표시해 준다. 이만큼 살았다고 표시를 하는 정도의 글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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