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땅에 떨어진 낙엽들

- 5분만 보고 있어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by doctor flotte

밝은 갈색, 옅은 갈색, 짙은 갈색, 아무튼 땅에 떨어진 낙엽들이 모두 갈색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가을 단풍을 찍는 사람들도 없다. 원하는 예쁜 단풍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지는 가시처럼 말라버렸고,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새 둥지가 저기에 보인다. 배운 적도 없을 텐데 새는 어떻게 저 나무 위에 균형과 무게를 생각해 무너지지 않는 둥지를 지었던 것일까. 아직도 말할 자신이 없는 어떤 이유 때문에 나는 올가을 내내 이 길을 걸었다. 여기에서 이번 가을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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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엉뚱한 건지 사람이 엉뚱한 건지 그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 가을은 어느날 찬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서 낙엽을 다 떨어뜨리면 끝나게 된다. 낙엽은 바람에 날려 멀리까지 날아간다. 그리고 비가 오면 물과 섞여 썩고 거름이 된다. 땅을 비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 그 주변에 있는 나무들은 양분을 얻고 겨울을 버티고 봄을 준비할 수 있다. 나무들끼리 약속한 것도 아니고 서로 도와주기로 한 것도 아닐 텐데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나무, 바람, 낙엽, 추운 가을 날씨가 약속이나 한 듯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 아파트 경비실 앞 감나무도 그렇다.


가을이 되면 감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주렁주렁 달린 감은 아무리 생각해도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다. 감나무가 사람들한테 따 먹으라고 그렇게 많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우선은 새들이 왠 떡이냐 하며 날아와 먹을 것이다. 새들은 추워지는 공기를 느끼며 알 수 없는 이유로 무엇이든 더 많이 먹고 몸을 쌀찌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점점 추운 날씨를 버틸 것이다. 새들이 작년 겨울을 기억하고 그럴 리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남은 감들은 줄기가 마르고 약해지면서 결국 땅에 떨어진다. 떨어진 감은 깨지고 터지고 달콤한 속살이 땅 짐승과 벌레들을 끌어모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주워먹기 바쁜 동물들과 벌레들은 자기도 모르게 이미 추운 날씨를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서로 상관없는 것들이 서로 상관없이 자기 일을 하는데 결국은 이렇게 마치 정교하게 누군가 설계한 것처럼 서로 도우며 겨울을 준비한다는 게 신기했다.


서양철학에는 ‘모나드’라는 개념이 있다. 철학과 학부시절 이 개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제는 하다 하다 철학자들이 말도 안 되는 개념을 만들었구나 싶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모나드라는 단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단자에는 이 세상의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 자기가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한 정보가 들어있고 그래서 단자는 사실 홀로 자기만의 계획에 따라 움직일 뿐인데, 결국은 전체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나는 그 철학자가 증명할 수도 없는 말들을 이렇게 막무가내로 해도 되는 것인지 참 한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안타깝고 안쓰러운 건 책과 이론, 개념 속에 철학이 있다고 생각했던 스무살의 나였다.


라이프니츠는 자연을 거닐고 사색하고 한 번 더 숙고하고 난 후 부득이 인간의 별 볼 릴 없는 언어로 책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인간들이 설마 자연을 사색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이 쓴 책만 읽으며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연을 먼저 그리고 인간과 삶을 먼저 충분히 생각해 보고 철학을 하는 것은 당시 그들에게는 따로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떨어진 가을 낙엽을 5분만 보고 있어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도서관에서 몇 시간을 책을 읽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나를 가르친 철학과 교수들도 정말 몰랐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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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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