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보던 나무들은 모두 낮의 나무들이었다.
청주에 있는 한 휴양림에 다녀왔다. 원래 숲보다는 말없이 출렁이는 바다를 더 좋아하는데, 휴양림 예약이 쉽지 않으니 기회가 되면 다녀오려 한다. 운이 좋게도 다른 건물들과는 거리가 떨어진 조용한 숙소를 골랐다. 2층에 숙소가 있었고 커다란 유리창이 있었다. 한쪽 벽면이 바닥부터 다 창이었다. 조금 아쉬운 건 생각보다 나무들이 가까이에 빼곡히 있어 멀리 있는 풍경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확 트인 경치를 좋아하는데 그렇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겨울이다 보니 해가 일찍 졌다. 산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눈이 조금씩 내렸다.
보일러가 잘 들어와 욕심을 내서 따뜻하게 켜고 잤다. 그러다 보니 공기가 건조해졌던 것 같다. 나처럼 비염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밤에 종종 깨기 마련이다. 물이라도 마실 겸 일어났다. 불을 켜고 화장실을 갔다 왔다. 커튼으로 대충 가린 커다란 창에 눈이 갔는데 밤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자기 위해 불을 껐다. 암순응이라고 하던가, 갑자기 불을 끄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잠깐 멈춰 있었는데 서서히 어둠에 적응할 때쯤 나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장면을 보게 되었다.
커튼으로 가리기는 했지만, 다 가려지지 않은 그 큰 창에 나무들이 검은색으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눈이 와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이렇게 깜깜한 밤에 나무들이 보인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한밤중에 커튼을 모두 열었다. 그리고 바닥부터 전체가 유리로 된 창 앞에 가만히 앉았다. 방은 어두웠고 밖은 덜 어두웠다. 한밤중 커다란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수묵화로 나무들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그림은 입체였고 나는 그 안에 들어와 있었다. 색이 없어도 검은색은 충분히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계속 앉아서 그 나만의 풍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이 더해졌다.
추운 겨울 저 나무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밤을 여기서 혼자서 보내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보던 나무들은 모두 낮의 나무들이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낮에 햇빛을 받고 자란다는 것뿐이었다. 광합성이라는 말에 세뇌가 된 우리는 빛이 없는 밤에 나무가 무엇을 하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무는 그냥 낮에만 자라는 그 정도의 식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무는 매일 낮과 같은 긴 시간 동안 저렇게 밤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그걸 알아주든 말든 나무는 여기서 그 많은 시간을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추운 겨울밤은 나무에게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가 추운 겨울밤을 혼자서 버티고 있다. 아침을 기다리며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나무는 아침을 모른다. 끝이 없는 밤을 버틸 뿐이다. 밤을 버티다 보니 낮을 살아가는 것이 나무가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