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티프터의 책, ‘늦여름’
생각하기도 기억하기도 싫은 일이 있다. 그래서 그 일에 대해 쓸 생각은 없다. 몇 번 써볼까 생각도 했는데 용기가 없다. 나는 그 일을 피해 다니고 있다. 아무튼 글을 이렇게 시작한 이유는 그 일,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어떤 책을 집어 들었고, 지금 그 책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우연히 어떤 책을 집어 들었다. 원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때는 좋고 싫은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선택한 건 아니고 선택하듯 그 책을 읽게 되었다. 아달베어트 슈티프터의 책 ‘늦여름’이 그 책이다.
책에 대한 정보는 일부러 찾지 않고 그냥 읽기 시작했다. 두 권짜리 책이라 당분간은 그냥 책에 빠져있기 좋았다. 나는 왜 이 책이 좋았던 걸까. 1인칭으로 쓰인 책에서는 사실 책의 주인공과 나를 일치시키는 게 오히려 쉽지 않다. 그런데 나는 점점 이 책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낯선 세상이었지만 나는 책 속의 장면 하나하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산과 들을 걸어다니는 한 청년의 모습이 좋았다. 매일 학교에서 공부하듯 책을 한 줄 한 줄 읽어가듯 혼자서 걸으며 산과 들을 관찰하고 자신의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렇게 걷기 위해서는 날씨를 알아야 했다. 날씨를 예측하는 법을 열심히 공부하고 배워서 나름의 방식대로 조금씩 날씨를 맞춰 갔다. 청년은 바위를 궁금해 하고 식물을 관찰하고 작은 돌을 주워 오고, 꽃과 나무들을 그렸다. 200년 전 한 청년을 몰래 뒤쫓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소설 속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지식과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소설 속의 세상은 지금 내 처지와도 내가 살아온 삶과도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그 세상은 너무 아름답고 조화롭다. 청년이 걸어다니는 산과 길, 건물과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상상한다. 그리고 그만큼 그 세상은 지금 내 처지와 내 세상과 멀리멀리 떨어진다. 좋다는 생각보다는 막연히 들었던 어떤 생각이 있었는데, 그건 만일 내가 어쩔 수 없이 이제 다른 세상에 살아야 한다면,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이 책 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이 책 안에 갇혀 영영 나오지 못한다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을 이렇게 단지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람이 짧게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세상을 마음에 품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어리석은 일이 왜 그리고 어떻게 절망에 빠진 인간에게도 아직 기쁨이 되는 것일까. 왜 지금 이 세상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쓸데없고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일까. 왜 아무도 완벽한 세상을 꿈꾸며 살라고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정신적으로 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학기술로 채워가는 편리한 세상은 내가 말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이 책을 번역한 분에게는 미안하지만, ‘늦여름’이라는 제목은 사실 독일어 제목 ‘Nachsommer’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늦여름은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늦더위 같은 느낌을 들게 하는데, 독일어 Nachsommer는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인간이 생활하기 더 없이 좋은 어떤 날씨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마도 이 단어를 통해 어떤 완벽한 계절, 어떤 완벽한 세상의 이름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작가 아달베어트 슈티프터가 고통 속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비극적인 철학자 니체가 이 책을 특히 좋아했다는 사실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더욱 이런 생각이 든다. 다른 세상으로 도망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