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시골 바닷가

- 많은 이야기를 삭히면서 여기 돌밭에 나와 석화를 캤을 할머니

by doctor flotte

겨울이 이렇게 빨리 가는 게 아쉬워, 조바심에 여행을 다녀왔다. 나처럼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 마음을 알거라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변산반도까지 내려갔다. 이런 계절에 서해 바닷가 해변은 제대로 쓸쓸하다. 예전엔 잘 되었던 것인지 의심스러운 오래된 민박집과 펜션들이 사람은 없고 간판만 남아 있다. 다 알고 서해 바닷가를 찾은 것이라 나는 다 괜찮다. 저기 바다랑 배들이 보여 무작정 걸어 내려갔다. 시골 마을엔 개들이 있다. 한 놈이 담 위에서 나를 보고 짖는다. 무섭게 생기진 않았는데 목줄이 없는 상태라 걱정이 되어 다시 돌아 다른 길로 가려 했다. 할머니 한 분이 마을회관에서 나오신다.


이젠 집에 가시는 모양이다. 내리막 길인데 보행기를 익숙하게 다루신다. 허리가 많이 굽었다. 우리 시골 할머니들은 왜 이렇게 다들 작고 허리는 굽은 것일까.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말에 의하면 평생 밭일을 해서 그렇다고 했다. 할머니가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소리가 작고 사투리가 섞여 잘 들리진 않았지만, 말을 이해했다. ‘개가 무서워 돌아가요?’ 나는 ‘네’라고 얘기했고 할머니는 내가 귀엽다는 듯이 ‘같이 가자’고 했다. 그 개는 나를 다시 보고 있었는데 전혀 짖지 않았다. 할머니가 있으니까 그런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그 개는 제 할 일을 한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니 짖을 수밖에. 나를 안전하게 잘 보호해 주신 할머니가 이쪽으로 쭉 내려가면 바다라고 했다. 묻기도 전에 알려주셨다. 그리곤 굽은 허리와 촌스럽지만 깨끗한 옷을 입은 친절한 할머니는 어디론가 가셨다. 왜 우리 시골 할머니들은 다들 이렇게 친절하고 착하신 걸까.


바닷가에 왔는데 까칠까칠한 돌밭이다. 물이 빠져 있었다. 저기 또 작은 할머니 두 분이 석화를 캐고 있었다. 몸이 또 너무 작아 보였다. 그 작은 몸으로 웅크리고 앉아 석화를 캐고 있었다. 너무 오래 그 일을 하셔서 그런지 전혀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작은 체구에 익숙하게 굽은 허리는 내가 이해할 수도 닿을 수도 없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나도 여기서 석화를 찾아보았다. 뾰족한 돌은 찾았고, 아직 껍질이 붙어 있는 통통한 놈만 찾으면 된다. 혹시 이런 건가 싶어 뾰족한 돌로 쪼아 보았다. 세게 치니 물이 조금 흘러나왔다. 용기를 내서 더 세게 쳤다. 껍질이 깨지면서 안에 물컹한 굴이 보였다. 순간 내가 뭔가 살아 있는 걸 재미로 죽인 것 같아 미안했다. 갈매기가 얼른 날아와 이 굴을 먹어 주었으면 했다. 그래야 내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저 할머니들은 절대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마을 이름을 알지 못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입장에서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시골마을일 뿐이다. 차를 타고 바닷가를 가다 보면 흘려보게 되는 맛집도 빵집도 없는 그냥 그런 시골마을. 별 볼일 없는 촌스런 시골마을.


나는 무얼 바라고 여기까지 내려온 것일까. 까페 하나, 빵집 하나 없다고 무시하는 내 마음은 왜 가져온 것일까. 수십 년 간 굽어가던 할머니의 굽은 등, 많은 이야기를 삭히면서 여기 돌밭에 나와 석화를 캤을 할머니에게서 아무런 이야기를 읽어내지 못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글을 쓰겠다고 이들을, 이 마을을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 겨울이 아쉽다고 호기롭게 여행이나 훌쩍 떠나는 나는 오십이 다 돼 가는 나이에도 왜 이렇게 가벼운 것일까. 진짜 깊이를 읽어내지 못하니 말이다. 마을이 있고, 바다가 있고, 배가 있고, 등 굽은 할머니가 있다면 나는 적어도 여기서 하루를 머물고 하루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서 이들이 살아온 날들을 상상하며 말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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