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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Sep 30. 2023

아까 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나1

삶은 정확히 철학자들의 반대편에 있다

아까 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나1.


비오는 날 운전을 했고, 빵집에서 빵을 사 왔다. 머리가 길어서 이발소에도 다녀왔다. 밤에 줄넘기도 했고 설거지를 하기도 했다. 쓸데 없이 늦게 자기도 했다. 


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나2.


운전을 하다가 큰 사고가 날 뻔 했다. 음악에 너무 빠져 있는 것은 고속도로 운전에는 위험하다. 나는 크로아상을 좋아한다. 이제는 빵집 직원이 먼저 크로아상이 있는지 말해준다. 미용실은 너무 비싸다. 한 번 머리 자르는데 2만원이라니. 밤 10시 이전에 줄넘기를 하려고 한다. 조용하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하면서는 영어공부를 한다. 블루투스 헤드폰으로 영어강의를 들으며 설거지를 한다. 1년 정도 그렇게 하고 있다. 멍청하게 또 하는 일 없이 늦게 잤다. 2시가 되면 아예 잠을 자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어 아무튼 잠을 잔다.


조금 전 이런 생각을 하는 나3.


전에도 한 번 그랬던 것 같다. 아마도 사고가 났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차사고가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니 고통은 거의 느끼지 못하겠지만, 처참한 상황과 나의 죽음을 맞이할 가족들이 너무 걱정이 된다. 그런 고통을 주고싶지 않다. 그건 내 잘못이니까. 내가 크로아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예전 독일유학생활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절대 여기 빵집의 크로아상이 맛있기 때문이 아니다. 크로아상은 방금 오븐에서 나온 조금 뜨겁고 약간의 기름기를 머금은 빵이어야 한다. 매일 아침 식사로 나는 커피와 그런 크로아상을 먹었고 나는 그렇게 천국에 있었다. 사실 미용실 돈이 비싸다는 것은 핑계다. 원래 자주 가는 미용실이 있었는데, 언젠가 조금씩 미용실 아저씨가 이발을 조금씩 빨리 끝내더니 이제는 거의 5분만에 머리를 깎는 것이었다. 전혀 정성을 느끼지 못했고 나는 작은 벌을 주고 싶었다. 나는 그 후 결코 그 미용실을 가지 않는다. 그리고 아까 그 빵집 바로 옆에 붙어있는 미용실이어서 나는 빵을 산 다음 굳이 그 미용실 앞을 천천히 지나간다. 미용실 아저씨에게 나의 처벌을 기억하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통유리라 그 아저씨는 거의 매번 나를 봤을 것이다. 줄넘기를 하는 이유는 솔직히 아무 생각없이 내 시간을 갖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뱃살도 빠지니 안 할 이유가 없다. 나는 왜 영어공부를 하는 것일까. 이유가 없다. 막연한 자기계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배짱이가 아닌 개미가 되어야 하고 남만큼 하면 남보다 앞설 수 없다는 무식한 국민학교 6학년 담임의 말에 세뇌가 된 것이다. 삶에 대한 미련이라고 밖에 말할 게 없다. 나는 무슨 노력을 하는 것 처럼 습관처럼 늦게 잔다. 시간과 싸우는 것인데 이것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라 더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나4.


이들 모두가 내 삶의 공간이다. 이것들이 내 삶이고 지금 나이다. 나는 없고 항상 서로 다른 지금의 나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자들의 거만한 물음에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철학자들은 우리를 무슨 바보처럼 취급하고 자기네들은 뭔가라도 아는 것 처럼 썪은 미소를 짓는다. 삶은 정확히 철학들의 반대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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