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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Mar 17. 2024

한 종류의 철학적인 작업일 뿐이다

나는 꼭 이 책을 써야겠다

동기와 마음가짐 그리고 나와의 약속     


어쩌면 책의 제목은 먼저 정해져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 나서 책을 팔기 위해 요즘 소위 ‘잘 팔리는 책 제목’을 이것저것 붙이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출판사의 사정이 있겠지만 ‘틀린 것’이다. 책까지 그러면 안 된다. 철학적 인간이라는 제목은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했던 동기이고 내가 이 책을 써가던 도중에 계속 붙잡아야 할 고집이고 내가 이 글을 마침내 책으로 묶게 된다면 그때에도 흔들림 없이 지켜내야 할 제목이다.     


나는 인간이 모두 철학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탐구에 대한 약간의 타고난 재능이 있어 그런 일을 하다 보니, 특히 철학을 하다 보니 분명 인간에게는 철학적인 타고난 존재방식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존재방식이 어디에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분명 모든 인간에게는 이러한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내가 특별히 대단한 인간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한 철학적인 존재방식이 이 책의 내용이고 주제인데,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책이 완성된다고 해서 내가 생각한 중요한 주제들이 충분히 다뤄졌다고 생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나 이후에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계속 이 책을 이어서 쓰는 일일 것이다. 빈말이 아니다. 무익하고 무의미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함께 그 일을 할 수 있다. ‘인간’이라는 공저자의 책을 우리는 계속 만들어 가야 한다.     


이 책은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우리는 어떤 태도로 철학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바꾸고자 하는 시도이다. 어차피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그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겠지만 다시 말해 나는 삶 속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인간의 철학적인 존재방식을 이제는 밖으로 꺼내놓고 싶다. 내가 제대로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삶이라는 생동하는 힘에 가능한 철학적인 개념들을 묶어둘 것이고, 대놓고 오해할 것이고, 도저히 끌어들일 수 없는 개념이나 관점들은 속 시원하게 무시할 것이다. 이러한 오만한 태도는 내 탓이 아니다. 한 종류의 철학적인 작업일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불필요하게 어렵지도 않고 길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문단을 자주 나누어 스스로 길거나 복잡한 문장을 만들지 않도록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몇몇 파편이라도 당신이 당신의 방식대로 간직했으면 한다. 아는 척을 하거나 알아야 한다고 다그치지도 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 좋은 선택을 했다고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해서 독자들이 이 책을 비난하는 일을 막으려 선수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쓸모를 무시하는 인간의 철학적 존재방식을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글이 쓰이고 등장하고 연결되고 끝나게 될지는 같이 기대해 보자. 나는 이미 연습을 많이 했으니 시간이 문제지 이 책이 완성되는 것은 별로 힘든 일이 아니다. 인간이 철학책을 골라 읽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인간을 선택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철학적 인간이라는 제목은 불가피하고 나는 꼭 이 책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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