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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Apr 19. 2024

꽃은 왜 피어나는가?

-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라는 말의 의미

꽃이 어떻게 피어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떻게 수정을 하고 어떻게 광합성을 하고 뿌리로 양분을 흡수하는지 우리는 학교에서 배웠다. 그러나 우리가 배우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왜 꽃은 피어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답을 찾지도 답을 주지도 않는다. 혹은 더 강력한 형태로 만들자면 ‘왜 꽃은 피어나야만 했는가’라고 다그치듯 물을 수 있다. 이 질문은 과학자들에겐 너무 가혹하다. 왜 꽃은 피어나고 또 그렇게 피어나야만 하는 것일까? 가장 스마트한 인류는 그 대가로 이런 질문을 묻는 능력을 팔아먹고 말았다.


꽃은 왜 피어나는가라는 물음은 꽃이 피어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꽃의 생명력에 대한 우리 인간의 겸손한 태도와 반성 그리고 우리는 원래 어떤 존재인지 대답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저 작은 꽃 한 송이가 왜 피어나는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 과정에 대한 우리식의 설명뿐인데, 그런 설명이란 왜라는 질문에 전혀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저 꽃은 처음부터 저렇게 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고,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그 가능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고난 자신의 목적을 유감없이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 꽃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꽃처럼 나는 무엇을 피워내야 하는 것일까?’ 아까 그 물음은 이렇게 한 바퀴를 돌아 나에게 다가오는 태도의 물음이지 지식이나 정답이 있는 물음이 아니다.


꽃은 왜 피어나는가라는 물음에는 애초 답이 없다. 저 아무것도 아닌 연약한 생명체조차 뭔가를 해내기 위해 꿈틀거리는 모습에 놀랐다면 우리는 그것이 내가 개입할 수 없는 저 꽃의 전부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고, 그런 인정은 저 꽃과 같은 생명체인 나의 생명력에 대한 놀라움과 인정에 이르게 된다. 나에게도 저것에 못지않은 생명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그 일을 해야 했던 동물이다.


이제는 나도 그걸 피워내야 한다. 꽃과 경쟁하듯 인간이 피워내야 할 꽃은 ‘이성’이다. 이성은 그걸 가지고 무얼 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이성은 기억력과 판단력 계산능력도 아니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 더 가지고 있는 능력도 아니다. 그건 물건을 개발하거나 상대방을 얕잡아보거나 나를 과시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순수한 생명력이고 사실은 그 동력에 충실한 삶이 우리가 사는 마지막 목적 우리가 사는 전부가 되는 것이다. 계절이 다해 꽃은 지겠지만, 꽃은 쓸모없는 짓을 한 게 아니다. 이성은 그걸 가지고 무얼 할 수 있는 쓸모 있는 도구가 아니며, 내 생명의 시작과 함께 언제나 함께 했고 내 몸과 같이 자라고 병들고 늙고 때가 되면 지겠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닌 그런 꽃이다. 이성은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유 없이 피워내야 할 내 꽃이다. 그래서 이성은 ‘목적’이 된다.


철학에서 이성을 뇌의 능력이 아니라 왜 피어나는지도 모르면서 피워내야 할 꽃으로, 왜라는 물음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운명과 같은 생명력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수천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수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몇백 년도 되지 않은 언젠가부터 인간은 이성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개인의 능력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20세기 프랑크푸르트의 비판이론가들은 그렇게 우리 삶의 편안함을 위해 이용해야 할 이성을 ‘도구적 이성’이라고 불렀고, 그 끝 비극적인 종말에 우리 현대사회가 이르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 우리는 이성이 마지막에 피어나야 할 꽃이라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비극이라 느끼지도 못한다. 인간은 몸을 가지고 태어난 동물인데, 왜 그런 지는 알 수 없지만 이성이라는 꽃을 피워내야 하는 그런 동물이다. 꽃을 피워내는 방법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삶을 관찰하고 순수한 언어로 기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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