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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May 31. 2024

왜 이리 어려울까

삶을 긍정하는 일

사실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건 대단한 유혹이나 갈등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일상 속에서 흔들리는 대부분의 경우는 정말 별 의미도 없는 것들 때문이었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어떤 나쁜 행동에 대해 그럼에도 하고 싶은 강한 욕구가 충돌해 혼란스러웠던 게 아니다. 살면서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은 이렇게 대부분 사실은 해도 안 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들 곁에 아무렇지 않게 있을 때였다.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낫지만, 한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바로 그때 나는 나약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차라리 거역할 수 없는 강제와 욕망으로 인한 것이라면 핑계라도 댈 수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은 없다. 그리고 여지 없이 시간과 하루는 흘러가고, 아까운 시간들을 후회해 봤자 돌이킬 수도 없으니 그냥 모른 채 하며 또 살아간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는 자꾸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상한 것은 이렇게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면서도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특별히 크게 후회할 만한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일들로 반성하는 경우도 드물다. 후회하거나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 보면 애초 후회하거나 반성할 만한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비슷한 상황이 되면 똑같이 그런 일들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마치 잠이 인생의 1/3인 것처럼 그렇게 사실 내 삶은 그런 아무렇지 않은 수많은 흔들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던 것이다. 일기장에 기록될 일이 없는 필요 없는 것들 말이다.


혹시 사소한 것들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하루를 채워가는 게 삶의 거의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기장에 기록될 일이 없는 것들이 실은 내 삶을 만들어가는 벽돌이었다면, 차라리 그것들을 긍정하는 것은 어떨까? 필요가 없고 가치가 없어서 일기장에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삶의 무더기를 다 담기에는 일기장이 물리적으로 작았던 것이다. 대단하지 않고 쓸모도 없지만 게다가 마음에 들지도 기억나지도 않는 내 모습들을 그냥 다 긍정하는 것은 어떨까? 정확히 말하면 내가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도록 압도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내 삶의 잡동사니들이 내가 고개를 들어 봐야할 만큼 높게 내 앞에 싸여 있다. 이것들이 필요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평가하기에는 너무 많다. 그냥 너무 많다.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는 것이다. 단지 어떤 것이 너무 많다는 것도 때로는 내가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된다.


사소한 흔들림을 후회하듯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학교에서 길들여진 습성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삶의 모양을 관찰할 수업시간은 없었다. 삶은 수많은 작은 모양들을 가진다는 사실은 가르쳐진 적이 없고 모든 교훈은 질서 없는 삶은 나쁘다는 식이었다. 사소하게 흔들리는 삶을 바람에 움직이는 목이 긴 꽃들의 성장운동이라고 가르치는 선생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를 귀찮게 하는 것들, 나를 신경 쓰게 하는 것들 그 모든 것들을 다 긍정하고 싶다. 편견과 기준이 없이 삶을 끌어안는 일이 왜 이리 어려울까. 흘러가는 아까운 시간에 대한 집착과 후회, 사랑하지만 가끔은 귀찮게 느껴지는 내 사람들과의 관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만들어지는 내 업적들, 저녁이 되어야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 별볼일 없는 내 나약한 마음들이 다 내것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분명한데 나는 왜 그 안에서 편안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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