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ctor flotte Jun 07. 2024

그냥 동물이 죽는 게 싫어서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살아야 한다.

전에 한 번 얘기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우리 집에는 왕사슴벌레 몇 마리와 백합달팽이가 있다.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그걸 처음 본 우리 아이가 너무 신기하고 귀여워서 고집을 부려 집에 가져온 것들이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다. 방금 몇 년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오랫동안 키워오고 있다. 처음에 가져 왔던 암수왕사슴벌레 한쌍은 하얀 번데기 같은 자식들을 나 놓고 모두 죽어버렸다. 나는 다 큰 왕사슴벌레가 어느 날 서 있는 채로 조용히 죽는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백합달팽이가 보통 이렇게 오래 살지는 않는다고 한다. 나는 왕사슴벌레와 달팽이를 잘 키운다.


왕사슴벨레는 흙을 갈아주고 젤리모양의 먹이를 주면 몇 주 정도는 알아서 잘 큰다. 그런데 하나 남은 백합달팽이는 매일 먹이를 주어야 한다. 키워보니 우리가 삽겹살 먹을 때 먹는 그 상추를 제일 좋아한다. 매일 상추 한 장씩을 주는데, 고기를 자주 먹지는 않으니 이제는 달팽이 때문에 상추를 따로 사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먹이를 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이제 죽을 때가 됐는데 왜 안 죽지?’ 귀찮은 마음에 언제 죽나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내가 곤충이나 동물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신기하거나 귀엽다는 생각도 없다. 그런데 그것들이 죽는 건 싫다. 특히 내가 관리를 못해서 결국 나 때문에 죽게 된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어떻게든 이들을 살리기 위해 많은 신경을 쓴다. 왠지 모르겠는데, 나는 살아 있는 것들이 죽는 걸 싫어한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일까? 아무런 감정도 쓸모도 없는 이런 일에 나는 왜 집착하는 것일까?


비오는 날 창가에 백합달팽이를 둔 적이 있는데 정신없이 움직였다. 비를 맞힌 건 아니고, 빗물이 튀겨 조금 들어오는 정도였는데, 백합달팽이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정말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백합달팽이가 비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놈도 좋아하는 게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비가 오면 잠깐씩 발콘 창문을 열고 화분 받침대에 놓아둔다. 실컷 놀라고.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달팽이가 좋아서가 아니다. 저 작은 통에 갇혀 있으니 불쌍해서 그런 거다. 어쨌든 조만간 알아서 죽었으면 하는 생각도 여전하다.


이런 생각이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저게 죽는 게 싫어서, 나 때문에 죽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키우는 것은 우리 상식에 맞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나는 정말 열심히 키운다. 습도가 모자를까 항상 분무기에 물을 채워두고, 흙이 오래 된 것 같으면 어서 새 흙을 사자고 아내를 졸라 댄다. 지저분한 환경이 되지 않도록 마스크를 끼고 이리저리 자세히도 관찰한다. 달팽이가 상추를 먹는 모습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그 옆에 누워 달팽이가 상추를 먹을 때 내는 아삭아삭 소리를 듣기도 한다. 포식을 한 달팽이는 힘이 생겨 뚜껑 위쪽 까지 거꾸로 올라와 힘자랑을 한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서 나는 이 달팽이를 오랫동안 살려 놓을 것이다.


어쩌면 나 같아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딱딱한 껍질에 잠시 숨어 연명하고 있지만, 공짜로 던져지는 상추나 누가 뿌려주는 습기가 없다면 쉽게 죽어버릴 이 나약한 달팽이가 나 같아서 그런 것 같다. 살아서 뭘 해야 하는 것도 없지만, 죽는다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너도 그렇게 사는 거냐고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아직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그냥 살아보는 것인데, 달팽이도 그런 것 같아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살아야 한다. 내가 달팽이에게 그리고 달팽이가 나에게 말한다.

이전 12화 왜 이리 어려울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