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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May 09. 2023

없지만 지금은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

괜히 슬프지도 않아 더 이상해진 상황을 붙잡기 위해서는

사실은 떨어진 동전을 줍듯 지금 그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꼭 글을 써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3주 전인가, 죽은 선배의 무덤에 다녀왔다. 대학 다닐 때 나를 귀엽게 봐준 선배였다. 나이도 많고 유쾌한 사람이었는데 죽었단다. 전해 듣기로는 밤에 자다가 죽었다는데 사실은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정말이지 실제 죽음에 대해서는 말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떨어진 동전을 다시 주운 이유는 재미있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성당에는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어디론가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몸과 함께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마력에 이끌려 나는 그 선배의 무덤을 찾아갔고 그 무덤 앞에 섰다. 


일산에 있는 커다란 공동묘지였는데, 바로 아래쪽에서는 어떤 아저씨가 카세트로 불경을 틀고 익숙한 듯 자신만의 세리머니를 위해 작은 무덤 앞에서 세팅을 하고 있었다. 평일 대낮 생각보다 이상했다. 나는 여기까지 왜 온 것일까, 흙무덤 앞에서 나는 무얼 해야 하는 것일까. 드라마에서처럼 혼자 중얼거리며 망자와 얘기하듯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 정말 사람이 죽었고 땅에 묻힌 다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면 나는 왜 여기에 서 있는 것일까? 괜히 슬프지도 않아 더 이상해진 상황을 붙잡기 위해서는 영혼이라는 것을 요청해야 했다.


이 순간 '없지만 지금은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허용되는 것이다. 무덤 앞에서는. 그렇지 않으면 나는 둥그렇게 쌓아놓은 흙 앞에서 정말 이상한 짓을 하는 정신 나간 사람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기 싫다. 아무도 안본다고 해도. 영혼이란 이렇게 무덤 앞에 서 있는 나로서는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있다는 게 아니라, 내 작은 순간이 정신 나간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정당화라도 해야 했던 것이다. 미안하지만 누워있는 형 보다 ‘나는 지금 결코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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