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떠는 아이, 마음이 떨리는 아이

by 영자의 전성시대

처음, 그 아이는 긴장한 얼굴로 나왔다. 침이 넘어가는 소리까지 들린다. 그러다가 손을 들더니 오른손으로 왼쪽 엄지와 검지 중간의 살을 뜯기 시작했다. 나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얼른 끝내야지’ 속으로 생각하며 서둘렀다. 그러는 사이, 이 아이는 몸을 흔들기 시작했고 목을 한 바퀴 돌렸다. 눈두덩이가 떨리며 몸을 더욱 심하게 떨고 있었다. 이 모든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3분이 넘어가며 복합적으로 모든 증상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손을 뜯고 목을 돌리며 몸을 흔들었다. 그러다 소리를 내는데 목에 무언가 껴서 막힌 것 같은 소리였다.


작고 야리야리한 그 아이가 처음 학교에 온 날을 기억한다. 하얗고 귀엽게 생긴 아이는 아직은 아기 모습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뛰고 날아다닐 때도 그 아이는 조용하게 책을 읽거나 자리에 앉아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조금은 내성적인 아이였다. 교복이 커서 형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엄마 미소가 나오게 하는 모습이었고 말소리도 조용했다. 그럼에도 자기 할 말이나 자기 의사 표현은 확실하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아이가 더 각인됐던 이유는 따로 있다. 어느 여름 방학식 날, 지인들과 베트남 여행을 가기로 했다. 퇴근하자마자 공항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비행기를 타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이 아이가 가족들과 함께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깜짝 놀라 눈을 피했고 혹시 같은 일정과 같은 호텔일까 봐 염려되었다. 아무래도 학부모와 함께 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다행히 비행기에서 내려 다른 길로 가는 것을 보며 안도했다. 그때 엄마의 손을 잡고 가는 아이의 얼굴이 참 예뻤고 사랑스러웠다. 그 아이의 엄마가 부러울 만큼.


나만 기억하는 이 작은 일로 그 아이에게 관심이 갔고 유심히 보게 되었다. 저학년 때 아이가 글을 너무도 잘 써와서 칭찬을 했더니, 아주 진지한 얼굴로 ‘감사합니다’ 하며 인사를 꾸벅했다. 그 모습이 어른스러워서 크게 웃었던 일도 있었고 모둠 수업을 할 때 꼼꼼히 자기 역할을 잘 해내는 기특한 모습도 기억한다. 크지 않은 목소리지만 발표할 때도 최선을 다하는, 눈에 띄지 않지만 자기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기 역할을 하는 학생이었다. 퀴즈 맞히기 시간에 다른 학생들이 흥분하며 난리였을 때도, 침착하게 손을 들고 기다리다 꽤 많은 문제를 맞히기도 했다.


1년이 지나 아이가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모에서 살이 빠지고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가끔은 팔이나 목 등에 상처가 있었고 눈을 잘 마주치지 않았다. 물어봐도 잘 대답하지 않고 소리는 더 작아졌다. 상처에 대해 물으면 얼버무렸고 어떤 것에도 거의 표현하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 붙들고 물었다. “어디가 아프니? 요즘 조퇴도 많고 결석 횟수도 늘고 무슨 일이니? 선생님이 너무 걱정스러워서 묻는 거란다.” 아이는 머뭇거리다 나의 진심을 느꼈는지 “아프긴 아픈데..., 틱이 심해져서 병원에 다녀요. 의사 선생님이 많이 쉬어야 한대요.”라고 대답했다. 난 순간 멍해졌고 예전에 ‘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던 것을 생각하며 “그랬구나, 알았다. 선생님이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부탁하렴.”하고 대답했다.


다시 1년 여가 지났고 아이들의 글을 첨삭하는 시간이었다. 1년에 4~5번 정도 개인적으로 꼼꼼하게 고학년 글쓰기를 첨삭하는 시간을 갖는다. 6학년들도 무척이나 긴장해서 가슴을 붙들고 나오거나 손을 바들바들 떨기도 한다. 분위기를 풀고자 농담처럼 “선생님은 너희들을 잡아먹지 않아요. 떨지 마세요.”라고 하면 “차라리 잡아먹어 주세요. 너무 떨려요.”라며 학생들은 긴장하며 글을 평가받는다.


이 아이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내가 긴장되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모둠 발표라 7명이 한꺼번에 발표하는 중임에도 아이의 긴장감은 높았고 틱 증상이 나오려고 해서 마음 졸였던 적이 있었던 터라 나도 모르게 이 아이를 의식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아이들도 모두 긴장하는 이 시간이 이 아이는 얼마나 힘들까 싶어 이 아이만이라도 안 하고 넘어가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이는 이미 앞사람이 하기 전부터 얼굴색이 변해 있었고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칭찬만 하자. 아이가 마음 편할 수 있도록 칭찬하자’라고 결심했고, 이 아이의 글을 읽으며 칭찬할 만한 곳을 찾았다. “와우, 이곳에 이런 문장을 쓰다니 좋은 표현인데!”하고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아이는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냥 이 자리가 너무 불편해서 힘든 지경으로 보였고 그것이 신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의 긴장감도 올라가고 얼른 읽고 보내야 했다. 소리까지 내는 아이를 다른 학생이 쳐다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동안의 시간이 흐르니 아이의 증상은 가라앉았고 나의 마음도 진정되었다. 아이는 갔지만 아이의 잔상은 종일 나에게 남아있었다. 처음에는 걱정과 염려로 가득했고 후에는 그 아이가 얼른 회복되기를 기도했다. 그러다 나도 손을 떨며 마음이 흔들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잘살고 있다. 나처럼 이 작은 아이도 지금을 잘 견뎌내면 단단한 청년으로 자랄 것이라 믿는다. 그리 자라기를 기도하며 다음 수업 때 이 믿음의 눈으로 이 아이를 바라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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