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뽑으러 오는 아이

흰머리 뽑으러 오는 아이

by 영자의 전성시대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흰머리와 친구가 되었다. 다행인 건 나이에 비해 흰머리가 늦게 조금씩 나고 있다. 그래도 제법 길어져 검은 머리 밖으로 기어코 나오는 몇 가닥이 있어 눈에 띈다. 몇 개를 뽑다가 ‘이러다 대머리 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에 뽑기를 그만두고 흰머리와 동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도 봐주고 있는 이 흰머리를 결코 봐주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두 명의 여자 아이인데 일찍 등교해서 아침마다 문안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흰머리가 어디 있을까요?” 하며 슬금슬금 다가와 일하고 있는 나의 뒤에서 머리를 스캔한다. 유독 왼쪽 귀 뒤에 흰머리가 모여 있는데 이걸 놓칠 리가 없다. 아이들은 발견하는 순간 “찾았다!”를 외치고 신이 난다. 아마 나의 흰머리가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나 보다. 이리 즐거운 걸 보면.

길어지기까지 나와 함께 했던 소중한 긴 흰머리는 못 뽑게 하니 짧은 흰머리를 찾느라 여념이 없다. 짧은 흰머리는 어떻게든 살아보려 뽑히지 않으려 하고 아이는 짧은 손톱으로 잘도 뽑아낸다. “선생님, 우리 엄마는 흰머리 뽑으면 500원 주는데!”라고 한다. 나도 질세라 “난 네 엄마가 아니란다.”하고 받아낸다.

그래도 고맙다. 나에게 관심을 주고 흰머리까지 뽑아주는 정성스러운 사랑을 주는 학생이 있기에 오늘도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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