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을 키운다는 건

첫번째 이야기

by 영자의 전성시대

아이들이 3년을 조르고 졸라서 반려견을 입양했다. 아이들은 절대로 부모님에게 민폐가 되지 않게 한다는 서약서도 썼다. 나는 딱 하나, 예뻐만 하기로 했다. 이름도 데려오기 한 달 전부터 고심고심하다 “알콩이”(이 아이로 인해 집안이 더욱 알콩달콩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로 결정했고 큰아이의 뜻에 따라 ‘비숑 프리제’로 키우기로 했다. 이렇게 알콩이와 우리는 운명적으로 만났다.


처음부터 알콩이는 사랑이었다. 손보다도 작은 몸으로 어찌나 빨빨거리고 집안을 헤매고 다니는지, 그냥 눈뜨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고 우리의 입은 늘 헤벌쭉 웃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날 무렵, 가족끼리 외식을 하는데 이상하게 빨리 들어오고 싶었다. 1시간도 안되어 집에 가니, 알콩이가 울타리 사이에 목이 끼어 숨을 못 쉬고 있었고 우리 모두 사색이되어 우왕좌왕했다.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아기를 손에 들고 마사지를 하며 숨이 돌아오길 기도했고 5분 정도가 지나니 아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정신을 잃었고 아가는 정신을 차렸다. 이일 이후로 나는 알콩이에게 더 책임감을 느꼈고 아이들은 TV와 유튜브로 공부하며 알콩이를 양육했다. 큰아이는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며 알콩이의 사료며 옷이며 가방 등등을 사들이며 행복해했고 하루에 두 번씩 산책을 시켰다.


아가가 너무 사랑을 받아서 살짝 네 가지가 없기도 했지만 알콩이는 사랑스러운 애교쟁이로 성장했고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그러다 주 보호자였던 큰아이가 호주로 떠나게 되었고 남은 이들이 알콩이를 감당하게 되었다. 작은 아이도 학교에 아르바이트에 공부에 바쁘다 보니 내가 주 보호자가 되었다. 큰아이가 싼 똥을 어쩌다 보니 내가 치우게 된 꼴이었다.


이때부터 알콩이와 나의 관계는 복잡 미묘해졌다. 너무 사랑하기도 하지만 말썽을 피우면 “저걸 내가 왜 키우고 있나!” 하는 한탄이 터져 나왔다. 하루종일 일하고 들어와서 똥부터 치워야 하고, 지친 몸을 끌고 알콩이와 산책을 나가야 할 때 간혹 후회되기도 하고, 출근할 시간에 아기가 입에 물건 넣고 도망 다니며 약 올릴 때 진심으로 화가 나서 어떻게 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독박 육아로 8개월을 넘길 즈음, 사건이 터졌다. 이 아가는 극성맞고 활발하고 먹는 것에 집착이 있다 보니 구석구석 사람 음식을 찾아 먹는데, 세번이나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초콜릿을 먹는 바람에 가족 모두가 긴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알콩이의 지능이 진화하는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을 때가 있어 당황했다. 가령 식탁에 하도 올라가서 의자를 저쪽으로 뒤집어놓으면 싱크대로 점프해 싱크대 위의 음식을 먹는 것이다. 거리가 있는데도 목숨 걸고 점프하는 녀석이다.


어머니의 생신날, 주섬주섬 어머니의 선물을 준비하다가 마침 좋은 초콜릿 세트가 있길래 그것도 챙겨 쇼핑백에 넣었다. 예약한 식당으로 가서 알콩이를 차에 두고 간식을 놓아준 , 우리는 식사를 했다. 40분 남짓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이동하러 차에 탔는데 분위기가 쎄 한 게 이상함을 감지했다. 누군가 쇼핑백을 그대로 뒷자리에 두었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내리는 바람에 알콩이가 그 초콜릿을 12개나 먹어버린 것이다. 알콩이는 계 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린 눈앞이 캄캄해졌고 24시 동물병원으로 직행했다. 일단 급하니 나만 내려 알콩이와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1시간 이내여야 위세척이 가능하다고 들었고 다행히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료 전 대기 중에 초콜릿 상자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른 보호자들이 말을 거셨다. “어머머머, 애가 초콜릿을 먹었나 봐요. 얼마나 먹은 거예요?” “12알이요.” “헉! 어떻게...”

그러다 나는 ‘알콩이가 이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 옛날 우리 아이들이 열이 펄펄 나서 밤 12시에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가던 그때로 돌아갔다. 그때도 아이가 어떻게 될까 봐 그렇게 철철 울었는데, 지금도 나는 그 앞에서 철철 울고 있었다. 아무도 울고 있는 나에게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고 나는 얼마 만인지도 모를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결과적으로 알콩이는 위세척을 하고 하루 입원한 뒤, 건강하게 퇴원도 하고, 엄청 비싼 진료비도 날려주고, 다시 집에서 예전처럼 말썽꾸러기 짓을 한다.


하지만 내 맘은 예전과 같지 않다. 이 아이를 키우는 게 무서워졌달까? 전보다 더 복잡한 마음이다. 더 깊이 사랑하지만 그 깊은 사랑이 나를 무섭게 만든다. 언젠가 이 아이와 헤어져야 할 텐데,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적당히 사랑할 자신도 없다. 반려견을 키운다는 건 이래서 어려운 일인가 보다. 똥을 치우는 것도, 산책을 시키는 것도, 목욕을 시키고,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산더미인 것도 싫다. 그러나 이 아이와 헤어지는 건 더더 싫다. 이 아이와 평생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최대한 오래오래 살기 위해 매일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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