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 miss you!!
아이가 넷인 집이 있다. 그 집 엄마에게 “아이들이 넷이나 돼서 힘드셨겠어요.”하니 어머니가 “에구 아니에요. 둘째부터는 거저 키웠어요. 첫째를 키우고 나니 동생들이 커 있더라고요.”하신다. 키울 때 큰아이가 제일 신경 쓰이고 둘째는 아니까 덜 신경 쓰이고 셋째부터는 이쁘기만 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첫째는 이쁘고 둘째는 이뻐 죽겠고 셋째부터는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배를 잡고 웃으며 고개를 연실 끄덕였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큰 아이를 낳고 너무나 행복했다. 아이가 귀한 집안이다 보니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어떡하지?’하는 불안함이 있었다. 엄마가 둘째를 갖고 싶어 집 한 채 값을 산부인과에 줄 만큼 노력했지만 허사였기 때문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족 모두가 아기 소식을 고대하고 있었다.
드디어 아기가 생겼고 이 아기의 탄생은 이미 절대적 사랑을 받을 거라는 암묵적 계시가 있었다. 아이는 커갔고 많이 산만했고 호기심이 왕성했다. 산만함이나 호기심이 많은 건 그 아이의 특징이지, 좋고 나쁜 것은 아니다. 더구나 호기심이 많으면 산만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을 그때는 몰랐고 이 아이를 튀지 않게, 우리나라의 교육제도 안에서 바람직한 아이가 되게 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다.
내 입장에서는 피나는 노력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세상 살기 힘들었겠다’ 싶다.(이 글을 통해 큰아이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이해보다는 아이가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서 결국에는 나도 불타고 아이도 불탔다. 참 슬픈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 아이는 나에게 세상 제일 어려운 아이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아이, 나와는 소통이 되지 않는 아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아이 그리고 나를 아주 싫어하는 아이로 변해 있었다. 눈물로 아이를 키우는 어리석은 나를 보며 어느 나이 지긋하신 분이 “기다려봐, 어렵게 키운 아이일수록 커서 부모에게 더 잘해. 나 봐. 우리 애도 엄청 힘들게 키웠는데 지금 잘하거든.” 하셨다. 나는 속으로 반신반의하며 “저는 그럴 것 같지 않아요.”하며 슬프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