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과 쌈닭 사이

by 영자의 전성시대

이번 여름 방학 독서캠프에서 고학년 도서 중 하나로 <마당을 나온 암탉>을 선정했다. 이 책이 처음 발간되었을 당시, 나는 아이 엄마로 양육에 대한 부담이 컸을 때였다. 어느 저녁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다가 컥컥거리고 울었다.


주인공인 ‘잎싹’이가 마치 나 같아서 마음 아프게, 때론 나보다 더 엄마다운 인물이라 반성하는 마음으로 그렇게나 눈물이 났나 보다. ‘난 암탉인데 용기가 없구나, 그럼 제대로 된 암탉이 되어 용기 내어 마당을 넘어가 보리라.’ 결심하기도 했다. 그런 사연이 있는 책으로, 중 1 교과 독서이기도 해서 고학년 아이들에게 맞춤이었다.




학교에서 나는 논술 교사로 전교생을 가르치고 있어 수업시수가 많은 편이다. 논술이 전공이다 보니 말투가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고 대부분이 직설적이다. 작정해야만 함축적 표현이나 설명적 어투로 바뀌지, 대부분은 생각한 논리대로 표현하는 편이다.


더구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의 기본 개념 위에 “모든 직업은 평등하다”라는 골조를 세우고 직위는 있으나 사람의 위. 아래는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게 문제다!


사람의 높고 낮음도 인정하고 불평등도 인정했으면 사는 게 지금보다 편했을 텐데 우리 부모님은 나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느끼게 키워주셨고 나만큼이나 다른 이도 귀함을 알게 키우셨다.


그래서 나는 우리 학교에서 청소 선생님을, 조리장 선생님을 가장 애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때론 뛰어가서 커피라도 드리고 멀찍이 계셔도 쫓아 가 인사하는 편이다. 그러면 그분들은 매우 부끄러워하시기도 하고 아주 좋아라 하신다.


그러나 낮은 직위로 인해 인간적인 부당함을 느낀다면 나의 태도는 다르다. 당연히 사회의 직위에서 오는 위아래는 따라야 할 일이지만 직위가 곧 나는 아니다. 따라서 인간적으로는 나를 낮출 수 없다.


간혹 이런 일들이 발생하면 밤잠을 설치고 입맛이 떨어지며 깊은 상념에 빠진다. 나의 논리를 죽이고 가치관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아주 깔끔한 근거를 만들어 찾아가 할 말을 한다.


다수의 사람들은 ‘눈감고 넘기는 것’을 나는 눈뜨고 넘기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나를 만만히 보지 않고, 심지어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음에도 “쌈닭”으로 비칠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암탉이 되고 싶은 나는 쌈닭이 아니다. 나만 좋은 엄마하고 내 아이만 잘 키워내는 참기만 하는 암탉 말고, 내 아이와 남의 아이도 더불어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울 줄도 아는 암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는 일’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 물어야 하고, 내가 ‘왜 이해할 수 없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이러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 암탉이 되는 것도, 쌈닭이 되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나이와 반비례하는 이 녀석을 끌어모아 지혜롭게 암탉과 쌈닭 사이의 중립을 지키며 살아남아야겠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지금보다는 이해되는 사회적 구조로 변화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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