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학교에 와서도 늘 불안한지 손가락을 입에 넣어 엄지손가락이 부르트고 모양새가 변형이 되어가는 아이. 오른쪽 엄지는 더 심해서 살이 곪아가고 있었다. 그 아이의 높은 불안도는 나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여서 수업 중 계속 그 아이를 보게 만들었다.
‘이 어린아이가 왜 이럴까?’ 궁금함을 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그 아이의 사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역시나 가정사가 좀 복잡한 아이였다. 조부모님이 아이를 양육하고 있었는데 할머님이 연로하셔서 매우 힘들어하셨다. 아마도 아이는 제대로 된 애착 관계 형성이 힘든 과정 속에 자란 것 같았다. 학교에 아이를 오랜 시간 맡기려 했으나 아이는 불안증세와 산만함이 매우 높았고 다른 학생들과의 다툼도 자주 일어났다.
“선생님, 쟤 때문에 불편해요.”, “쟤가 저를 밀었어요.” 등등 아이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이 아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별일이 아닌 것도 아이 탓을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아이는 더 성을 내며 불안해했고 사정을 아는 나는 아이를 감싸고 싶었다. “그렇구나. 불편하구나. 하지만 친구 사이는 내가 불편하기도 하고 내가 불편을 주기도 하는 거야.”라고 일러주며 혼자인 아이를 두둔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심심하면 선생님한테 와, 언제든지!”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글도 느리고 학습도 느려서 아이는 따로 앉혀서 처음부터 따로 지도해야 했다. 내 말을 꼭꼭 느리게 받아먹는 아이가 사랑스러웠고 안쓰러웠다. 이리 사랑스러운 아이가 누구에게 제대로 의지하지 못한 게 마음이 아팠다. 할머님은 학교에 돌봄을 원하셨는데 아이는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안정을 취하는 것이 시급했다. 그러나 할머님의 형편도 이해는 되었다. 그래서 ‘내가 퇴근하면서 우리 집에 데려가 한글이라도 제대로 가르치면 어떨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할머님보다는 덜 힘들게 아이를 가르칠 수 있을 것 같기에. 그러나 상황상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내가 줄 수 있는 만큼의 마음으로 아이를 받아낼 수 있을 만큼 사랑하며 받아주었다.
중학년이 된 어느 날, 이 아이가 쉬는 시간에 헐레벌떡 뛰어왔다. 놀란 나를 안으며 “선생님, 저 회장 됐어요!”라며 웃었다. 난 소리를 지르며 “와, 축하해. 역시!” 하며 감격했다. 이 소식을 알리려고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뛰어온 아이, 나에게 자랑하고 싶어 한달음에 달려온 아이, 내 자식 같았다. 너무도 기뻤다. 그리고 이리 자라 준 아이에게 감사했다.
오늘도 고학년이 된 아이는 나에게 와서 백허그를 한다. 그리고 마음 울컥하게 조용히 말한다. “선생님, 사랑해요.” 이 아이의 진심이 느껴져 나도 조용히 “선생님도 진짜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