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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언제 와?", 그 아름다운 질문

by 영자의 전성시대

아이들이 어릴 적, 터울이 적은 아이들을 키우는 건 꽤나 고역이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았으니까. 그때는 그날그날 살면서 아이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커버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기도와는 다르게 다음 날도 아이는 커 있지 않았고 사람다운 대화가 간절했다. 두 명을 데리고 나갈 수도 있었으나 그건 꽤나 힘든 일이었고 용기가 필요했다.


가뭄에 콩 나듯 친구나 지인을 만날 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행복했다. 집을 벗어나 아이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 그 시간은 귀하고 귀했다. 입에 모터를 단 듯이 이야기를 했고, 커피를 마시며 본격적으로 대화에 돌입할라 치면 핸드폰이 울렸다. 여지없이 "엄마, 언제 와?"

이 소리만 들어도 얼른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우울해지는 나였다. 그 시절은 양육이 구속과 속박처럼 느껴져서 숨이 막히기도 했다.


안 클 것 가던 아이들이 크고 성장해서 자신의 삶으로 떠나간 후 1년 동안 나에게 "집에 언제 와?"라고 묻는 이는 없었다.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지만 허전함은 컸다. 시간이 지나며 허전함이 허전함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쯤 아이들이 잠시 돌아왔다. 집안은 시끌벅적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그리도 없어지지 않던 음식들이 동이 났고, 일주일에 한 번 돌리던 세탁을 매일 해야 했으며, 쓰지 않던 식기세척기는 매일 돌아갔다.


아이는 돌아가기 전까지 집에서 재택근무를 해야 해서 우리는 퇴근 후에 외식을 하거나 장을 보거나 산책을 하러 나갔다. 주말에 시간 맞춰 그 짧은 기간에도 여러 번 여행을 가기도 했다. 서로 매일의 스케줄을 체크해 일정들을 만들어 갔다. 거의 함께 있었음에도 간혹 밖의 일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온다. 그리고 대뜸 첫마디가 "엄마, 언제 와?"


순간, 울컥한다. 너무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말, 나를 필요로 하는 말, 나를 기다리는 말, 나를 기대하는 말, 나를 바라보는 말, 나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 말,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말!


이후에도 아이는 끊임없이 나를 찾았고 심지어 문자로도 찾는다. 내가 누군가의 찾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 참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어릴 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찾아주는 이에게 고마워하며 성의 있게 대답한다. "응, 곧 들어갈게."


화면 캡처 2025-03-20 142108.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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