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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슝이 뭐예요?

by 영자의 전성시대

"선생님, 저랑 가오슝 가실래요?" "네? 가오슝이 뭐예요?"


가오슝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대만의 부산 같은 곳이 가오슝인데 2박 3일로 가기 좋은 곳이고 자유여행하기 안전한 곳이라 한다. "원래는 타이베이부터 다녀오셔야 하는데, 아쉽네요." "그르게요. 근데 저 대만은 한 번 다녀온 적 있어요.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지우펀도 갔고 단수이도 갔고 돌 전시되어 있는 무슨 바다공원 같은 데도 갔어요. 홍등도 날렸는데..." "선생님, 타이베이 다녀오셨네요. 거기가 다 타이베이예요." "아, 그래요? 그럼 저 타이베이 다녀왔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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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기념일을 맞아 동료들과 어찌어찌 시간을 맞춰 떠난 여행, 암것도 모르고 쫓아간 여행길이었다. 일이 많아 검색도 채 못하고 일단 떠나기로 했고 떠나는 날 짐을 쌌다. 어쨌든 떠나는 건 설레는 일이고 미지의 세상이라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다. 암것도 모르고 비천한 몸뚱이를 가진 나를 데리고 다녀준다는 선생님들이 고마울 뿐! 가면 열심히 잘해주야지 결심했다. 이번에는 먹는 것도 까다롭게 굴지 말고 엔간하면 눈 꼭 감고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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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도 많고 갈 곳도 많고 살 것도 많다는 가오슝, 생각보다 아주 깨끗한 도시로 지하철역이 거대하고 교통편이 편리했다. 아파트마다 작은 테라스에 식물을 가꾸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 상점 앞에 작게라도 화분을 놓고 꽃을 감상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너무 덥고 습한 기후에 전체적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이 허덕이는 우리네와 달라 보여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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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우리는 로밍도 유심도 와이파이 도시락도 준비하지 않고 지도 한 장만 달랑 들고 여행을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여의치 않았다. 감으로 길을 찾다 엄청 헤매는 중에 지나가던 청년들에게 길을 물었다. 이들은 번역기를 돌려가며 성심성의껏 길을 알려주다 기어코 함께 따라나섰고 매우 친절하게 꽤 먼 거리를 동행해 주었다. 가면서도 우리의 질문에 웃음을 터트리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고 헤어질 때도 자신들의 연락처를 줄 테니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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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이들만 친절한 게 아니다. 가는 곳마다 대만 사람들 특유의 순박한 미소가, 지하철이나 공공장소마다 정겹고 서두르지 않으며 시끄럽지 않게 어울리는 모습이, 아침 점심 저녁의 식사 때마다 길게 줄을 서서 식사거리를 포장해 가는 소탈 하지만 가정적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특이한 점이 음료가방에 음료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심지어 스타벅스의 음료도 음료걸이에 넣어 다녔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나를 더 귀여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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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와 급작스럽게 내리는 폭우와 입에 맞지 않는 음식과 끊임없이 걸어야 하는 육체적 노동 속에 지치기도 했지만 함께한 동료의 재잘거림과 계속되는 어이없는 실수들이 나를 웃게 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이른 아침의 아무도 없는 뒷골목의 풍경이, 호텔 와이파이로 부랴부랴 찾은 동네 맛집의 테라스에서 마시던 커피 한 잔과 그 설렘이, 평일 출근하는 나와 닮은 듯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질적인 모습이 가오슝 여행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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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2박 3일의 여행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예전 대만여행을 다녀왔음에도 갔는지조차 잊어버렸던 그때와는 다르다. 수동적 여행과 능동적 여행은 시종일관 다른 코스, 다른 시간, 다른 시각으로 그 나라를 보게 한다. 이번 여행으로 대만 사람들과 가까워졌다는 착각이 든다. 지금도 지하철 코스가, 1시간 헤매다 찾아간 그 식당이, 비 맞고 걸었던 까르푸 앞길이, 다리가 퉁퉁 부어 줄 서던 선착장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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