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주는 사기

나의 사유 에세이 9

by 영자의 전성시대


방학 중에 몇몇 선생님들과 오랜만에 만나 좋은 시간을 보냈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다 보니 늦은 저녁이 되어 돌아갈 채비를 했다. 나는 걸어갈 요량에 일부러 차도 두고 운동복에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너무 어둡고 걷기에 좀 무리가 있는 거리였지만, 그동안 덥다고 움직이지 않은 내 몸에 덜 미안하고 싶어 걷기를 고집했다.


3명의 선생님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약간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큰길이라 차도 많고 사람도 간간이 있고 결정적으로 가로등이 환하게 비추고 있어 전혀 무섭지 않았다. 얼마나 갔을까? 있는지조차도 모를 만큼 작은 오솔길이 옆에 있었고 앞서던 선생님이 그 길로 들어서자 우리는 자연스레 따라갔다. 그 선생님이 늘 다니시던 둘레길이라며 눈 감고도 갈 수 있다고 하셔서 별생각 없이 따를 수 있었다.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칠흑 같은 어둠이 우릴 맞이했다. 산속이라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겨우 두 명 지날 정도의 좁은 길이 끝이 없이 이어졌다. 분명 내가 아는 길 근처임을 아는데도 영화 속의 장면으로 들어간 것 같은, 터널 안으로 들어가니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린 것 같은 그런 느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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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도 강해지고 갑자기 비도 내리기 시작했다. 옛날 전설의 고향 속의 공간적 배경처럼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며 괴기스러운 소리를 내는 산속, 말도 안 되게 그 속에 내가 있었다. 나는 겁이 많은 편이라 밤에 엘리베이터도 혼자 타는 걸 어려워하고, 다른 곳에서 화장실 가는 것도 두려워한다. 겁 많은 나를 알기에 내가 위험하거나 무서울 일을 만들지 않는다.


계획되지 않은 이런 밤의 세계에서 한참을 헤매고 드디어 아는 길이 나타났다. 1시간가량의 산행을 마치고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니 가족들이 “누구든 건들면 죽일 것 같은 눈빛이야. 무서워.”라며 말했다. 자려 누우니 아까의 일이 아득히 저 옛날일 같은, 꿈꾸는 듯한 데자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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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면 내가 진짜 무서웠던 건, ‘어둠’이었을 거다. 아침에 오늘 갔던 둘레길을 걸었다면 상쾌한 기분으로 운동 삼아 걸었거나, 낮에 걸었다면 소화시킬 겸 풍경을 감상하며 유유자적 걸었을 것이다. 어둠은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눈먼 자들의 도시’의 등장인물처럼 낯섦에 혼란스럽고, 눈으로 보는 것이 다 인 세상에서 그 눈의 효용성이 없어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살면서 보이는 것에 집중하며 그것에 의미를 두었다. 사람들이 보여주는 말과 표정과 행동에, 나타나는 상황과 환경이 진짜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건 어둠이 주는 사기 같다. 어둠이 걷히면 진짜가 나타난다. 그들이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왜 이런 상황과 환경이 발생했는지 잠잠히 숨겨진 본질을 찾는다면 생각보다 사는 게 덜 무섭고 덜 힘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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