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을 살아보니

by 영자의 전성시대

김형석 교수의 <백 년을 살아보니>를 읽었다. 아주 꼼꼼하게 그분의 100년의 삶을 읽었다. 인간이 100세를 산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생각해볼 때 아직은 축복 같지는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럼에도 이분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은 더 살아봄직 하다고 설득이 되었다. 자연스레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사유했고 신념 있게 잘 살다가 지혜롭게 죽음을 잘 준비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고 느지막이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는데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지인이 작고했다는 소식이 왔다. 나보다 몇 살 위인 그이는 늘 웃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적당한 거리 뒤에서 서로 응원해 주던 사이였다. 둘 다 잔병이 많다 보니 “건강하게 살자”라며 걱정하며 눈으로 이야기하고, 그 사람이 아프고 난 뒤에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다가가지 못함으로 늘 미안함이 있었고 그래서 한 달 남았다는 소식에 급히 집으로 달려갔다.


마주친 그 얼굴은 내가 처음 본 얼굴이었다. 살이 빠져 얼굴은 작아졌지만 부어 있었고 물이 찬 배는 불편하게 보이고 다리 쪽은 부종으로 걷기가 힘들었다. 낯선 얼굴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뭐라고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말을 하고 황급히 그 자리를 모면했다. 모면하는 내 모습이 또 미안해서 그분을 위해 더욱 기도했다. 아무쪼록 기적이 일어나기를, 아무 일 없듯 툭툭 털고 일어나 반갑게 만나 인사하기를 기도했다. 내가 믿는 그분은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는 분이기에 기도가 더 절실했다. 밤에 자기 전에 기도하며 잠들고, 잠에서 깨면 일어나기 전 기도했다.


그러다 연락이 온 것이다. 마음의 밧줄 하나가 툭 끊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마를 잃은 아이들, 아내를 잃은 남편을 위해 기도했다. 그들이 얼마나 어려운 이별을 했을지 가슴이 아팠다. 장례가 끝난 뒤, 집으로 왔을 때가 가장 슬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가족들이 먹먹한 가슴으로 집으로 들어갈 때 덜 슬퍼하기를, 덜 아파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그분은 천국에서 아픔 없이 행복하게 있을 것이라 믿었다.


공교롭게 하루에 생을 넘치게 사는 사람과 생을 다 채우지 못한 사람과 함께 조우했다. 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거의 살아있는 정신으로 밤을 새우고 일어났다. 사는 것과 죽는 것,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씻고 옷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하지만 상념에 젖은 내 속은 올라올 줄 모른다. 마음이 점점 무채색이 되어 존 버닝햄의 책 <지각대장 존>의 마음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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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며 내일을 살아갈 우리 아이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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