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재미있게 시청했던 알쓸신잡 프로그램이 있다. 진짜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각 분야의 권위자들이 나와 그냥 지적인 수다를 떠는 프로그램인데 그 내용이 일반인들에게 참 유익했다. 그래서 TV를 규칙적으로 보는 게 어려운 나는 다시 보기를 통해 시청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그 프로의 패널들이 쓴 책들을 검색해서 한 번에 구입하여 읽기도 했다.
프로그램도 종영하고 나의 열의도 식은 지 오랜 어느 날, 오랜만에 우연찮게 TV에서 ‘알쓸인잡’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내가 ‘TV를 본다는 것’은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린다’의 의미와 같다. 그런데 이 프로는 나의 손을 멈추고 집중하게 만들었다. 천문학자가 보는 ‘나’의 개념을 통해 인문학자가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나’와 과학자가 반추하는 ‘나’, 법의학자와 영화감독의 경험을 통한 ‘나’ 등등 주제는 같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살펴보고 있었다.
어느새 깊이 빠져들어 공감하고 배워가는 ‘나’를 발견한다. 그들이 드는 예시를 통해 삶의 다양성을 인지하고, 각 분야의 ‘생각의 다름’을 통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그들의 화법을 통해 내가 더 나아갈 바를 찾아야 한다는 ‘지식으로의 도전’에 대해서도 인지했다. 그리고 어찌나 말들을 그리 잘하는지 말을 꽤 잘한다는 소리를 들은 나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논리 정연한 그들의 기승전결의 대화에 기가 눌리기도 하고 나의 지경을 넓히고 싶은 욕구도 느꼈다.
이야기의 내용 중에 “잘하는 나도 나고, 그렇지 못한 나도 나다. 이연경 선수가 키가 작아 벤치만 앉아있을 때, 기가 죽어 내 탓만 했다면 그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거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있는 동안 다른 선수들의 경기패턴을 관찰하고 숙지했다. 그래서 경기에 출정했을 때 빠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선수가 될 수 있었다.” 말인즉슨 못난 나의 모습 또한 온전히 수용하는 자세를 통해 어그러진 나를 만들지 않고, 생각의 전환으로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꽤 많은 인문학 책을 읽어가며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 중에 이 시간은 아주 유익했다. 그들이 자신의 연구와 삶을 통해 이야기하는 ‘자신’들의 소개를 집약적으로 나타냄으로 간단명료한 ‘나’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에서는 알아두면 쓸데없다고 했지만 틀리다. 가장 알아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모든 세계관의 근간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나부터 제대로 이해하고 수용하자. 불쌍한 내가 되지 않도록 나를 아껴주고 내 속을 품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