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앞에 6학년이 되어 졸업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가 앉아있다. 이젠 제법 예비중 티가 나는지 수염도 거뭇거뭇 나고 변성기라 목소리도 남자 목소리가 나려고 한다. 그럼에도 내 눈에는 아기로 보인다.
6년 전, 2교시 수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갑자기 교실 앞문이 벌컥 열리고 한 할머니가 아이를 업고 들어오셨다. 놀란 나는 눈이 동그래져 “누구신가요?”하고 물었다. 할머니는 아이를 내려놓으며 “에고 아기 밥 먹이느라 늦었습니다.” 하시며 아이를 내 쪽으로 미셨다. 이게 이 아이와 나의 첫 시작이었다. 보다 보다 학교에 아기처럼 업혀 온 아이는 처음 봤다.
그 당시 방학 중 열린 수업이라 간식이 제공됐는데 아이는 빵 봉지도 혼자 뜯지를 못하고 내가 뜯어주기를 기다렸고 빵 하나를 분해해 책상과 바닥에 늘어뜨렸다. 나는 도와주지 않았고 대신 아이 스스로가 다 치울 때까지 기다렸다. 정리가 끝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해서 그냥 내가 하는 게 사실 더 편했을 거다. 그러나 이 아이에게는 이런 생활 습관 지도가 시급했고 이게 이 아이를 도와주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6년 내내 아이는 거북이처럼 자랐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었고 다른 친구들이 늘 도와주는 게 일상이었다. 나는 친구들의 도움 없이 혼자 하게 하려 했지만 정해진 시간이 있기에 끝날 때는 교사나 친구들의 도움이 항상 필요했다. 저학년 때는 어리니까 그렇다지만 고학년이 되고 나서도 늘 처지고 무언가를 완성하려면 두 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손이 많이 가는 학생인 데다 자기 고집도 있어서 썩 좋아할 수가 없었다.
6학년이 되고 나서 가끔씩 수업 시작하자마자 대뜸 웃기고 싶은 마음에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며 수업분위기를 깨기도 했다. 아이들은 맥락없는 유머에 야유를 보내기도 했고 나는 아이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행동은 여전히 굼뜬데 이제 좀 컸다고 나를 떠보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끝낸다’는 생각을 먼저 가지라고 야무지게 꾸짖었다. 그런 아이가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진짜 물가에 내놓은 아기 같다. 어찌나 내 속을 여러 번 뒤집었는지 이 아이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지금 앉아서 나름의 노력으로 진지하게 뭔가를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또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나온다. 업혀서 온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스스로 걸어 나갈 시간이 코앞이다. 이 아이가 중학교에 잘 적응하기를, 늘 덤덤하게 자기 페이스를 고집하는 그 모습 그대로 주위 환경이 휘몰아치더라도 느리지만 자기 길을 끝까지 가기를 축복한다.
아이야, 너 또한 나에게 사랑스러운 제자였음을 기억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