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시간

by 박종희

정년을 마친 낙타가 한가로이 오수(午睡)에 빠져 있다. 두 무릎을 꿇고 엎드린 늙은 낙타의 등으로 누더기가 된 햇살이 쏟아진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살포시 눈을 뜨는데 웬만한 일은 눈감아주고 살아왔다는 듯, 아래로 오긋이 내려 깐 두 눈이 무덤덤해 보인다.

휘어지도록 많은 짐을 지고 걷는 낙타는 지치고 허기지면 등이 낮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체념하고 살아온 세월이 길었다는 듯 성숙한 여인의 젖무덤 같던 봉우리가 겨우 흔적만 남았다. 동병상련의 마음 때문일까. 사막을 벗어나 조락(凋落)의 시간에 든 그의 굽은 등과 야윈 발에 자꾸 눈길이 머문다.


사막에 길을 내느라 만신창이가 된 낙타의 발가락을 보면서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 꼼짝달싹할 수 없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우리도 별빛을 의지해 걷는 낙타의 운명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남편의 실수로 떠안은 빚물이 하느라 우리 부부도 서로의 등에 혹을 짊어지고 아득한 사막을 걸어야만 했으니까.

남편은 사람이 좋아 친구가 많다. 측은지심이 강해 어려운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남편의 복병이다. 사람은 다 자기 마음 같은 줄 알고 지내다가 뒤퉁수를 맞는 일도 잦았다. 남편의 중학교 동창한테 빚보증을 서주었는데 그 친구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는 그 친구 공장이 부도났다는 소문이 떠돌았는데 정작 빚을 내준 남편만 모르고 있었다.

적은 돈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 인지.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는 분노로 남편을 바라보는 것도 힘들었다. 눈앞에 놓인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남편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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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품격과 향기는 글쓴이의 심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겸손한 언어로 누구나 공감하는 수필, 구들장 같이 온기 있는 언어로 따뜻한 수필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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