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뒷모습에서 찾은 위로

가장 아프고 초라한 시간을 함께 견딘다는 것

by 스카이블루 킴

본 병원에서 퇴원 후 요양병원에 입원하였다. 요양병원은 수술 후 환자들이 보통 1~2개월 머물다 떠나는 곳이지만 간혹 1년 넘게 병실을 지키는 이들도 있었다. 겉보기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평온한 일상이 흘러가는 듯해도, 병실 문 너머엔 저마다 남모르는 고통을 견뎌내는 환우들의 하루가 있다. 그렇기에 매일 마주치던 얼굴이 어느 날 아침 보이지 않으면 간호사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에도 슬며시 가슴이 내려앉는다. 그야말로 "지난밤 안녕하셨습니까?"가 생생한 현실이 되는 곳이다.


우리 부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어딜 가나 늘 함께인 데다, 부부가 나란히 암 환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환우들은 우리의 속사정도 모른 채 우리 부부를 '잉꼬부부', '모범 부부'라 부르고 있었다.


요양병원 생활 2주 차, 택배를 찾으러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염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가벼운 목례를 나누자마자 그는 대뜸 내게 염색은 어디서 하느냐고 물었다. 입원 초기라 나도 잘 모른다며 민망하게 웃어 보였다. 평소 천연 헤나 염색을 고집하던 터라, 정기검진 차 고향 부산에 내려갈 때까지 꾹 참고 있던 참이었다. 적갈색 머리칼 사이로 길게 자라난 흰머리가 유독 도드라져 스스로도 흉하다 여기던 시기였다. 그는 반백의 머리였지만 표정이 밝고 기운이 좋아 보였으며 사복을 입고 있어 나는 그가 보호자인 줄 알았다.


그가 후두암 4기 환자라는 사실은 며칠 뒤 대학병원 진료실 앞에서 다시 마주치며 알게 되었다. 그 역시 부산에서 올라와 치료를 받고 있었다. 낯선 타지에서 '부산'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묘한 친근감이 싹터, 그 뒤로 마주칠 때면 자연스레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사별 후 홀로 된 그를 위해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아들이 휴직까지 불사하며 곁을 지키고 있었다. 묵묵히 아버지를 돌보는 아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거듭될수록 염 선생님은 눈에 띄게 쇠약해졌고, 폐렴까지 겹쳐 열흘 남짓 입원했을 땐 그저 인사로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어 안쓰러웠다.


그럼에도 그는 늘 밝은 쪽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노모에게 발병 사실조차 알리지 못한 채 투병하면서도, 동생들이 챙겨준 반찬이나 명절에 가족과 함께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의 얼굴에 행복이 묻어났다. 김장철에는 우리 몫의 김치까지 한 통 챙겨주던 그 다정함이 아직도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


요양병원에 오래 머물다 보니, 남자 환우들은 아내가 곁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얼굴빛부터 달랐다. 염 선생님의 그 짧고 덤덤한 미소 뒤에도 슬쩍 슬쩍 외로움과 고단함이 배어 있었다.


그 외로움의 깊이를 남편이 마주하게 된 건 어느 날의 산책길이었다. 장루 주머니 관리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남편은 걷는 내내 불편함을 호소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편이 야속해 잔소리를 하면서 옥신각신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알콩달콩하게 보였는지 묵묵히 함께 걷던 염 선생님이 가만히 미소 지으며 남편의 어깨를 툭 쳤다.

"손 선생은 참 복이 많아. 나는 우리 아들놈이 휴직까지 하고 고생하는 거 보면 미안해서 맘 편히 아프단 소리도 못 해."

남편이 머쓱한 듯 입을 다물자, 염 선생님은 먼곳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작게 내뱉었다.


"이렇게 24시간 곁에서 짜증도 다 받아주고 챙겨주는 마눌이 옆에 있으니 얼마나 좋아. 난 그게 제일 부러워."

순간 남편의 걸음이 멈칫했다. 멋쩍은 듯 입술을 굳게 다물었던 남편은 슬그머니 나를 곁눈질하더니 이내 찌푸렸던 미간을 폈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는 걸, 홀로 투병하는 염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남편도 비로소 깨달은 듯했다. 나는 내심 염 선생님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며 그의 완치를 진심으로 빌었다.


얼마 후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친 염 선생님은 퇴원 인사를 전해왔고, 그의 빈자리는 금세 다른 환우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가 떠난 날 밤, 잠자리에 들던 남편이 불쑥 내게 말했다.

"고마워."


남편은 평생 살가운 인사 한 번 제대로 할 줄 모르던 사람이었기에 뜬금없는 인사에 순간 놀랐다. 서툴고 투박하게 뱉어낸 그 세 글자 속에 그간의 미안함과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남편의 이불깃을 당겨 덮어주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남편은 진작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험난한 투병을 결코 혼자서 해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자신의 가장 아프고 초라한 시간, 염색조차 하지 못해 희끗희끗해진 아내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말이다. 어둠 속에서 '고마워' 라는 투박한 세 글자의 여운이 병실의 고단함을 조용히 덮어주고 있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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