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일의 위대함
남편은 직장암 수술 후 배꼽 오른쪽, 10센티쯤 되는 자리에 장루 주머니를 달고 나왔다. 장루는 인공항문을 말한다. 소장의 일부를 복부 밖으로 끌어내어 고정시켜 배설 통로를 만든 것이다. 다행히 남편은 아슬아슬하게 괄약근을 살릴 수 있어, 일시적인 기간 동안만 장루를 관리하면 되는 경우였다. 수술 부위가 깨끗하게 아물면 몇 개월 뒤 다시 장을 연결하는 복원 수술을 한다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장루 주머니를 처음 교체하던 날의 생경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수술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배에는 여기저기 거즈가 붙어 있었고, 피주머니까지 달려 있었다. 남편의 배는 작은 전쟁터 같았다.
짙은 녹색의 묽은 변이 장루 주머니에 어느 정도 차오르자, 처음 보는 간호사가 나타나 자신을 장루 전담 간호사라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주머니를 교체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남편은 소장의 끝부분인 회장을 이용해 만든 장루라 소화효소가 섞인 묽은 변이 나온다고 했다. 장루에는 통증을 느끼는 신경이 없어 만져도 아프지 않으며, 익숙해지면 일상생활 대부분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그러다 장루를 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예쁘게 잘 만들어졌네요.”
그 말이 유난히 귀에 꽂혔다.
‘저 모습이 예쁘다고?’
속으로 반문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수없이 많은 장루를 보아온 간호사가 예쁘다고 한다면, 정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남편의 장루를 예쁘게 봐야겠다고.
두 번째로 찬찬히 바라보았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건조 막바지의 말랑말랑한 작은 곶감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의 거리가 조금 좁혀졌다.
퇴원이 가까워지자 전담 간호사가 다시 와서 남편에게 장루 주머니 교체 교육을 했다. 늘 누운 채로 도움을 받던 사람이 일어나 자신의 장루를 직접 들여다보며 교체를 배우는 순간, 남편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 표정이었다.
교육 도중 남편이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잘 보이지도 않고… 환자가 직접 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은데요?”
‘나는 못하겠으니 보호자가 해주어야 한다고 말해주시오’ 하는 뜻처럼 들렸다.
하지만 간호사는 단호했다.
“아닙니다. 본인이 하셔야 합니다.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도 합니다. 90대 어르신도 합니다. 초등학생도 합니다. 화장실 뒤처리와 같습니다.”
남편은 백기를 든 얼굴이었다. 나는 그 옆에서 선뜻 “내가 해줄게”라고 말하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었다.
퇴원 후 가장 큰 과제는 장루였다. 남편은 깨어 있는 동안은 물론이고, 잠도 깊이 자지 못했다. 밤에도 두세 번씩 일어나 주머니를 비웠다. 이미 경험이 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고 했다.
‘남편이 유난히 예민한 걸까?’
궁금해 유튜브를 찾아보니, 세상에! 장루 주머니를 찬 채 마라톤을 뛰는 사람도 있고, 바다 수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놀라웠다. 나는 남편이 장루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기를 바랐지만, 그의 신경은 온통 주머니에 가 있었다.
퇴원 후 두 번째로 장루를 교체하던 날이었다. 남편이 장루가 아프다고 했다. 장루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는데 왜 아플까 싶어 살펴보니, 문제는 장루가 아니라 주변 피부였다. 배설물이 닿았는지 피부가 짓무른 것이다. 남편이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다가, 기저귀 발진처럼 헐어버린 피부를 보고 가슴이 아려왔다. 퇴원할 때 받아온 보호 크림을 발라주고, 그날부터 나는 장루 주머니 교체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뱃살이 없는 남편은 일반 장루 주머니가 잘 접착되지 않고 뜨면서 피부 트러블이 자주 생겼다. 그래서 여윈 사람들이 쓰는 특수 장루 주머니로 교체하면서 4개월을 버텼다. 그렇게 복원 수술을 받을 때까지, 나 역시 장루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한 번은 장루가 막힌 듯 배설물이 나오지 않아 응급실로 향한 적도 있다. 응급실로 향하는 이른 새벽 차 안은 숨 막힐 듯 고요했다. 내비게이션의 건조한 안내 음성만이 이따금 정적을 깰 뿐, 조수석에 앉은 남편은 의자를 젖힌 채 머리를 기대고 굳은 표정으로 장루 주머니 쪽만 연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만약 복원 수술도 하기 전에 장루가 잘못된 거라면 어쩌나, 최악의 경우 재수술이라고 했는데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하면서도 무서운 상상들이 꼬리를 물었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축축하게 땀이 배어났다.
그렇게 바짝 타들어 가는 속을 졸이며 어둠이 점점 걷히는 도로를 달리던 중이었다. 갑자기 조수석 쪽에서 작게 '푸르륵'하며 가스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막혀있던 배설물이 주머니로 조금씩 밀려 나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상이 없다는 검사 결과를 듣고 다시 차에 올랐을 때,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한동안 앉아 있다 시동을 걸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알게 깨달았다. 장루는 남편에게 수술 그 자체보다 더 길고 고통스러운 시련일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런 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어땠을까. 장루는 단순한 배설 통로가 아니라, 질병으로부터 몸을 지켜주고 다시금 일상을 살아가게 해주는 눈물겨운 ‘생명의 통로’였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
그 단순한 세 가지가 얼마나 위대한 진리인지, 일상이 가장 밐바닥까지 단순해지고 나서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