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지 않은 사랑과 알리지 못한 진실에 대하여
“엄마, 우리 프랑스 한 달살이 하러 가요. 엄마 생신 전에는 귀국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잘 지내고 계셔요.”
작년 6월 초순,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복국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본가에서 한참을 머물다 일어서며 남편이 꺼낸 말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툭 내뱉었지만, 그 말 안에는 여러 겹의 망설임과 다짐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어머님은 순간 놀라시는 듯 눈을 크게 뜨셨다가, 이내 잘 다녀오라며 내 등을 가볍게 토닥여 주셨다. 손길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지만 나는 괜히 코끝이 찡해 고개를 숙였다. 우리 부부는 구순을 넘긴 노모가 막내아들의 암 소식에 놀라실까 봐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상경했다.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건 언제나 마음에 작은 돌 하나를 얹고 사는 일이다. 걸을 때마다 그 돌이 굴러다니며 존재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 돌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그 무게를 감당하기로 했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나중의 일로 미뤄 둔 채로.
그때만 해도 수술 후 회복까지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님께는 끝까지 알리지 않을 작정이었다. 한 달쯤이면 모든 것이 정리되고,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프랑스 한 달살이는 그저 지나가는 핑계쯤으로 남을 거라고, 그렇게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수술 후 조직 검사 결과는 우리의 예상과 달랐다. 병기가 달라졌고, 그에 따른 추가 치료가 필요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어느 정도 회복한 뒤 2차 수술인 장루복원 수술까지 해야 한다는 치료 계획이 잡히면서, 최소 6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해졌다. 한 달이라는 계산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아픈 사람의 시간은 검사 결과와 수치에 따라 예고 없이 늘어난다. 하루하루는 계획이 아니라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 오늘 괜찮아 보여도 내일은 달라질 수 있고, 어제 세웠던 계획은 아침 회진 한 번으로 무용지물이 된다. 차라리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는 편이 나았다.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결국 생신이 지난 지 2주쯤 되었을 때, 우리는 전화를 드렸다.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잘 지내고 계셨느냐는 남편의 첫마디에 어머님은 오래 기다려 왔다는 듯 반갑게 되물으셨다.
“오냐, 너희는 프랑스 여행 잘 갔다 왔나?”
스피커 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반가움이 잔뜩 묻은 목소리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편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끝내 말을 잇지 못했고 침묵이 흘렀다.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여러 번 마음속으로 연습해 두었던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 어머님, 너무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사실 저희 프랑스에 안 갔어요. 그이가 암 수술 받았어요…”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입안은 바짝 말라갔다. 약간의 침묵이 다시 흘렀다.
어머님은 처음엔 울먹이셨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끝까지 차분히 들으시며 서서히 진정하셨다. 생각보다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시는 모습에, 놀라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어쩌면 그동안 눈에 띄게 살이 빠진 아들을 보며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신 역시 암 투병 중이기에, 삶이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평소의 어머님이라면 통곡이라도 하실 것 같아 차마 말씀드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한 어머님의 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곁을 지켜 줄 며느리를 믿어 주셨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을 맡겨 주는 신뢰, 그런 것이 느껴졌다. 구순을 넘도록 살아오시며 굵고 깊게 패인 그 속마음을 내가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함을 보여주신 그 마음의 깊이는 아직도 가늠할 길이 없다.
고령 시대를 살다 보니, 주변을 돌아보면 노모가 자식의 병이나 심지어 죽음조차 알지 못한 채 지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물론 자식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숨긴 탓이지만, 그 이면에는 충격받고 상심하실 부모님을 향한 배려가 있다. 알리지 않는 선택 역시 사랑의 한 방식인 셈이다. 알리지 않는 사랑과 알리지 못한 진실 사이에서, 우리는 늘 서툰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이 남길 상처보다, 지켜 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 뿐이다. 그래서 때로는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 역시 어머님이 모르신 채 넘어가게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시점이 수술을 무사히 마친 뒤였기에 서로 조금은 숨을 고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만약 그 이전이었다면, 이만큼 담담하게 말하고 받아들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보지도 못했던 프랑스 한 달 살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 어머님도 프랑스 이야기는 그 뒤로 다시 꺼내지 않으셨다. 그 침묵 속에는, 아마도 서로를 지키기 위한 배려가 조용히 놓여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