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수술실로 들어가던 날

그도 똑같은 사람이었다

by 스카이블루 킴

10시가 넘자 가족들이 속속 도착해 대기실 자리를 채워주었다. 일상적인 대화로 내 불안을 덜어주려 애쓰다가도, 내가 휴대폰 알림을 확인할 때면 약속이나 한 듯 숨을 죽였다.

수술 당일, 정확히 오전 7시였다. 남편이 수술실로 들어가기 위해 동행했다. 단출하게 두 명만 가는 우리 부부와 달리,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할아버지는 아내와 딸, 사위, 손자까지 우르르 가족이 함께 따라왔다. 수술실 앞 풍경은 묘했다. 같은 목적지로 향하고 있지만, 누구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담담했고, 누군가는 애써 웃었으며, 누군가는 이미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각자의 불안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수술실 앞에서 간호사가 갑자기 인사를 하라고 했다. 그사이 남편은 수술 모자까지 쓰고 수술받기 위한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다.

‘엥? 무슨 인사를 하라는 걸까?’

마치 먼 길이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한 숨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끝나 있을 텐데 새삼 인사라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에서 나온 한 마디.

“ 수술 잘 받고 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갑자기 목이 메어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저 평범한 인사말이었을 뿐인데,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말끝이 떨리고 있었다. 간호사가 건네주는 남편의 안경과 신발, 그리고 폴대를 들고 돌아 나오는데 가슴이 미어졌다. 함께 이동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수술실로 들어간 뒤 결국 딸의 손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리셨다. 사위와 손자가 곁에서 말없이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고 있었다. 3대가 함께 있는 그 모습은 요즘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가족의 온기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아, 이런 것이 수술실 풍경인가 싶었다.

홀로 남편이 없는 병실로 돌아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병실은 금세 텅빈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의 물건 등을 정리하고 침대를 다시 정돈했다. 휴대폰으로 남편의 상태가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었기에, 나는 하릴없이 그 작은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다림이라는 건 늘 이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9시를 조금 넘기자 수술을 시작한다는 문자가 왔다. 현대의학의 기술을 믿고 의사를 믿으면서도 ‘수술’이라는 말이 지닌 위험성 때문에 마음이 좀처럼 놓이지 않았다. 내가 수술받을 때보다 오히려 더 불안했다. 막연히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함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필요할 때만 간구하는 사이비 신자인 나는 염치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하느님을 찾았다. 그 순간만큼은 간절히 붙잡고 매달릴 대상이 있어야 했다.


10시가 넘자 가족들이 속속 도착해 대기실 자리를 채워주었다. 일상적인 대화로 내 불안을 덜어주려 애쓰다가도, 내가 휴대폰 알림을 확인할 때면 약속이나 한 듯 숨을 죽였다. 병문안 오지 못한 친정 식구들은 문자와 전화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마음을 안고 있는 시간이었다.


드디어 수술 시작한 지 3시간 30분 만인 12시 30분.

수술이 끝났으니 집도의 면담을 하러 오라는 문자가 왔다.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며 회복실에서 마취가 풀리면 병실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게 느껴졌다. 감사 인사를 충분히 받을 새도 없이 그는 바쁜 걸음으로 시야에서 멀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사람의 생사를 다루는 의사가 나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로 보였다.


남편은 회복실로 옮긴 뒤 3시간 만에 병실로 돌아왔다. 병실을 나간 지 8시간 30분 만이었다. 그의 얼굴은 여태껏 본 적이 없는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울음을 간신히 참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간호사는 환자의 장기가 수축한 상태라며 두 시간 정도는 잠을 재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마취가 덜 풀린 탓인지 자꾸 눈을 감고 자려는 남편에게 말을 걸며 얼굴을 바라보는데,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늘 든든하던 사람이, 저렇게 연약한 얼굴로 누워있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통제를 맞고 있음에도 통증은 쉽게 가라앉는 듯 시시각각 아프다고 호소했지만, 진통제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다시 투여할 수 있었다. 약이 닿지 않는 통증은 결국 본인이 견뎌야 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사람도 나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사람이었구나. 평소에 온갖 센 척은 다 하더니, 수술 앞에서는 두렵고 아플 수밖에 없었고, 통증 앞에서는 나약한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런 사람이 가장 노릇을 한다고, 힘들다는 내색 한번 없이 얼마나 버티며 살아왔을까를 생각하니 새삼 짠해졌다.


에고, 평소에 센 척이나 하지 말던가. 그래도 그 센 척 덕분에, 나는 그동안 한 발 뒤에서 마음 놓고 살아올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술은 끝났지만, 그날부터 나는 환자의 아내이자 보호자로서의 시간을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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