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어쩌면 천운이었다

검버섯이 쏘아 올린 작은 공

by 스카이블루 킴

단순한 점인 줄 알았던 검버섯이 계기가 되어, 남편은 만 65세에 생애 첫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게 되었다. 대장내시경은 장을 깨끗하게 비워내는 고된 작업부터 시작된다.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장 정결제를 마시며 속을 완전히 비워내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남편 역시 2리터나 되는 용액을 여러 번에 나눠 마시며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더니, 정작 검사를 받기도 전에 이미 기진맥진한 환자가 되어 있었다.


날이 밝고 남편과 함께 한국건강관리협회를 찾았다. 나 역시 이곳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은 적이 있기에 병원에 대한 신뢰는 깊었다. 검사를 기다리는 남편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별일 아닐 거라며 애써 다독였지만, 사실 내 마음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남편의 이름이 호명되고 그가 검사실로 들어간 뒤, 나는 대기실에 홀로 남아 부디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런데 남편보다 늦게 들어간 사람들마저 하나둘 밖으로 나오는데도 어찌 된 영문인지 남편만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초조한 마음에 진료실 앞을 서성이다 살며시 문을 열어보니, 남편이 대기 의자에 넋이 나간 채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남편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망설이더니, 이내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나, 직장암이래….”

의사와의 면담을 마친 남편은 다리에 힘이 풀려 미처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해?”

“응. 조직 검사 결과를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99% 암이라고 하네.”

평생 병원 신세 한 번 진 적 없이 건강을 자부하며 살아온 남편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을 터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머릿속도 한없이 복잡해졌다.


사실 내게는 ‘직장암’이라는 단어보다 남편의 그 표정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평생 살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설고 두려움 가득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암 선배'인 내가 있잖아. 내가 살려 줄게.”

내 너스레에 남편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굳게 닫힌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직장암 수술 후 8년째 건강하게 살고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치의를 찾아 곧바로 병원 홈페이지에서 진료 예약을 했다. 예약 메모란에 간단한 인적 사항과 함께 '최대한 빠른 진료를 부탁드린다'는 간절한 글도 남겼다. 환자나 보호자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텐데 이런 메모가 무슨 소용일까 싶으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잡힌 예약일은 두 달 뒤인 6월 하순이었다.


건강만큼은 늘 자신만만했던 남편의 멘탈은 암 진단과 함께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병원 진료를 받기 전까지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을 이어가도 되는 건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내 유방암 때도 그랬다. 수술 날짜를 받아두고도 겉으로는 평온한 일상을 보냈던 기억이 났다.


다만 그때의 나와 지금 남편이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음의 무게였다. 진단을 받은 후 남편의 얼굴에는 깊은 수심이 가라앉아 있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나는 본의 아니게 그의 전담 '멘탈 관리자'가 되어, 때로는 어르고 달래며 때로는 쓴소리도 해가며 멘탈 강화 훈련에 돌입했다.


남편은 암 진단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결국 아들, 딸 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일상을 버텨냈다. 그러다 보니 환자로서의 배려나 위로는 기대할 수조차 없었다. 여느 때처럼 집안 행사 참석은 물론이고, 친구들을 만나 당구 치고 훌라도 하며 겉보기엔 아무일 없는 사람처럼 지내는 남편을 볼 때면, 오히려 내가 더 속상했다.


그러던 5월 둘째 주, 기적처럼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갑작스럽게 취소된 자리가 생겼다며, 예정된 날짜보다 한 달이나 앞당겨 5월 중순에 진료를 보러 올 수 있겠냐는 반가운 연락이었다. 그때부터 3주 동안 매주 병원을 오가며 수술 전 필요한 검사들을 차례로 받아나갔다. 체력적으로는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그 정도 수고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드디어 교수님과의 상담 날. 교수님은 직장암 1기로 보이며,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는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소견을 주셨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가슴 깊은 곳에서 안도와 감사가 왈칵 차올랐다. 남편의 얼굴에도 그제야 오랜만에 환한 빛이 돌았다. 나는 한껏 기분이 좋아져 남편에게 큰 소리로 으스댔다.

“당신, 내가 그날 등만 긁어주고 말았으면 지금쯤 암인 줄도 모르고 살았을 걸? 그 검버섯을 놓치지 않고 바로 병원에 갔으니까 이렇게 조기에 발견한 거라구!”

그 말을 듣던 딸이 냉큼 가세했다.

“우리 같이 여행 가길 정말 잘했지? 여행 안 갔으면 아빠는 집에서 효자손으로 등이나 긁고 말았을 텐데, 그럼 그걸 어떻게 알았겠어?”

아들도 질세라 한마디 거들며 쐐기를 박았다.

“내가 아빠 살 빠진 거 눈치챘을 때부터 난 진작에 뭔가 있는 줄 알았다니까.”

어째 서로 자기 공으로 돌리려다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그조차도 한없이 좋았다. 온 가족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 무사히 고비를 넘기고 터져 나오는, 안도 섞인 즐거운 비명이었으니까.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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