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검강검진을 받다
재작년 10월 말, 요양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와 남편을 보니 살이 빠져 있었다. 남편은 원래 여윈 체질이라 ‘여름을 탔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픈 아내라도 곁에 있는 게 도움이 되었는지, 내가 집에 없는 동안 식사가 부실했기에 그랬다고만 생각했다.
퇴원은 했지만 나 역시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어서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솔직히 남편에게까까지 세심하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던 아들이 말했다.
“아빠, 너무 살이 빠진 것 같아.”
말을 할 때마다 볼이 패인다고 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남편 곁으로 가 어깨와 등을 만져 보며 살 좀 찌워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동안 남편은 별다른 동요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아들이 출근하고 나서야 남편은 내게 슬며시 다가와, 자신에게 신경 써 준 아들이 대견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날 우리는 바로 남편의 ‘체중 늘리기 프로젝트’를 세웠다.
매일 점심 한 끼는 무조건 육류 먹기
밥 양은 조금 더 늘리기
오후엔 30분 이상 산책하기
잠자는 시간 늘리기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기
나는 항암 식단 때문에 육류를 멀리해야 했지만, 남편을 위한 식단을 따로 짜고 정성껏 준비했다. 객지에 있는 딸은 밀키트와 반조리 식품을 택배로 보내며 동참했다. 가족이 모두 마음을 쓰는 게 고마웠는지, 남편은 내가 보기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살이 붙은 것 같다며 좋아했다.
가족들의 다정한 정성 덕분인지 남편은 조금씩 생기를 되찾아갔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한참 진행되던 이듬해 2월 태국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나의 병치레로 지난여름을 휴가 없이 보냈을 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아이들과 추억을 남겨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사에 신중한 남편은 수술한 지 1년도 안 됐다고 난감해했지만, 난 6개월이 지났으니 괜찮다며 강행했다. 호모 루덴스인 딸이 계획을 총괄하고 아들이 예약을 맡는 등, 남매가 신이 나서 추진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 해도 행복했다. 살다 보니 기회라는 것이 늘 주어지는 게 아니었기에, 고민을 오래하는 것은 실행을 늦출 뿐이었다.
태국에 도착하여 짐을 풀자마자 아이들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우리 부부도 뒤 이어 준비해서 나가려고 하는데, 그때 갑자기 남편이 등이 가렵다며 긁어 달라고 등을 내밀었다.
러닝셔츠를 올려 등을 긁어주려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남편의 등을 본 지 오래되긴 했지만, 분명 예전엔 못 보던 점이 5~6개 불규칙하게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원래 점이나 검버섯이 많은 편이긴 해도 그 위에 새로 생긴 듯한 뚜렷한 검은 점들이었다. 모양도 비대칭이고 색도 진했으며 도톰하기까지 해서, 어찌 보니 징그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보, 이 점 언제 부터 있었어?”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아무리 자기 몸이라고 한들 등 위에 생긴 점을 알리가 없었다. 문득 예전에 유튜브에서 봤던 내용이 떠올랐다. 갑자기 생겨난 점은 건강의 이상 신호이며 암과 연관 있다는 이야기였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암’이라는 단어는 머리 속에 번쩍 떠올랐다. 최근 살이 많이 빠진 것도 혹시 그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내 몸만 돌보느라 남편에게 너무 무심했던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미안함이 왈칵 몰려왔다.
귀국하면 무조건 건강검진부터 하자고 강하게 밀어붙였고, 남편은 슬그머니 물러나며 그러겠다고 했다. 검진 이야기에 남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혹시 검사받다가 무슨 병명이라도 덜컥 받을까 봐 겁이 난 것인지, 아니면 숨겨둔 지병이 발각 날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사실 남편은 병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의사에 대한 신뢰가 낮은 사람이다. 퇴직 이후 8년 동안 건강검진 한 번 받지 않은, 이른바 ‘건강검진 무용론자’다. 그런데도 그동안 비교적 건강을 잘 유지해 왔기에 병원 없이도 잘 버텨 왔다.
귀국한 다음 날, 우리는 건강검진센터로 갔다. 위내시경을 비롯해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검사들도 함께 진행했다. 환자복을 입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검사받는 남편을 따라다니는 동안 내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혹시라도 무슨 진단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일주일 뒤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콜레스테롤이 조금 높고 위에 약간의 문제가 있을 뿐, 대사 나이는 58.4세로 주민등록 나이보다 6.8세나 어렸다. 복부 나이는 52.9세, 혈압 나이는 59.7세로 ‘매우 좋음’ 판정받았다. 일단 십 년 감수하며 한시름 놓았다.
이후 피부과를 찾아 문제의 점에 대해 상담받았다. 의사는 점이 아니라 검버섯이라며 단정 지었다. 다만 갑자기 생긴 것이라면 2차 병원에서 확인해 보는 게 마음이 편할 거라고 덧붙였다. 검버섯이 그렇게 색이 진하고 통통할 수 있냐고 물었다가, 눈에 힘을 주며 “검버섯 맞습니다” 하는 통에 머쓱하고 민망했다. 나선 김에 바로 2차 병원에 갔지만, 마침 피부과 의사가 휴가 중이라 예약만 하고 돌아왔다.
한시름 놓은 우리는 ‘체중 늘리기 프로젝트’에 다시 박차를 가하자며 의지를 다졌다. 살다 살다 이런 프로젝트를 하게 될 줄이야. 남들은 살을 못 빼서 난리인데 말이다. 이발하고 온 남편의 얼굴이 한결 밝아져 있었다. 가족 단톡방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시 들썩였다. 짐짓 태연한 척했지만 아이들도 제 나름대로 바짝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별일 아니라는 소식 하나에, 집안 공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날 새삼 느꼈다.
거실 창가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이 평범하고 무탈한 일상이 계속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평화로움이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었다는 사실을, 그때의 우리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