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할 수 없는 이유

by 하나둘셋

묵묵히 성실하게 일했는데 회사가 보상하지 않는다며 억울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묵묵히 성실히'는 보상 책정에 있어서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이기는 어려운 것 같다. 회사에서 중요하게 보는 건 성실함이 아니라 유능함이다. 유능한데 성실하기까지 하면 좋다는 것이지 성실하기만 해도 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성실함만으로는 부족한 이유를 말하기 위해 먼저 '유능함'에 대해 정리해야 할 것 같다. 회사에서 말하는 '유능함'이란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에 대한 높은 이해를 전제로 한다. 업무별로 요구하는 역량이 다르고 직급별로도 원하는 역할이 다르다. 예컨대, 언론홍보 업무라면 기자들과의 신뢰를 쌓는 기술과 예측이 안 되는 여러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이 중요하다. 적성에 잘 맞는 업무였다. 그런데, 정책기획 업무는 완전히 달랐다. 유의미한 정책 과제를 발굴하는 능력과 관련 자료를 다루는 능력이 중요했다. 너무 낯설어서 진땀을 뺐다. 업무에 따라 요구되는 역량은 달랐지만 어쨌든 두 경우 모두 성실함은 기본이어야 했다. 직급에 따른 역할도 마찬가지다. 팀원일 때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때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팀장일 때는 입을 다물 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니까 보상을 원하는 직장인이라면 회사가 내게 요구하는 역량과 역할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그러나 '묵묵히 성실하게 일했는데 회사가 안 알아준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회사의 요구에 둔감할뿐더러 상황에 따라 요구의 내용이 변화한다는 점은 상상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다. 평가하는 입장에서는 그러한 직원이 성실하다고 생각되는 게 아니라 자기 고집이 강하고 발전이 없다고 여기게 된다.




보고서 작성에 최적화된 팀원이 있었다. 보고서의 품질도 좋았고 무엇보다 손이 정말 빨랐다. 다른 사람들이 5건 처리할 때 그는 10건을 처리했다. 그런데 그는 팀장이 돼서도 팀원들의 보고서 수정만 하려고 들었다. 전체적인 업무 관리와 팀원들에 대한 동기부여가 팀장의 역할이라고 수차례 얘기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그는 '성실'하게 주말에도 팀원들의 보고서를 집으로 가져가서 수정해 왔다.


예결산, 계약 등 행정 업무를 탁월하게 하는 팀원이 있었다. 규정에 따라 체계를 잡아서 놓치는 거 없이 일을 진행해서 미덥고 고마웠다. 그런데 영업기획 업무를 맡고서도 관련 규정만 붙들고 있었다. 우선 외부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라고, 그러다 보면 일이 만들어진다고 아무리 채근해도 "내가 아는 게 없는데 무작정 만날 수는 없다."라며 '성실'하게 규정과 매뉴얼만 들여다봤고 1년이 다 갈 때까지 업무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8차에 걸친 시민 강좌를 담당하는 팀원은 매번 강좌에 참석해서 모니터링을 했다. 지역별 순회 강좌였기 때문에 외근을 나가야 했고 모니터링을 끝내면 다시 사무실로 복귀해서 10시까지 '성실'하게 야근을 했다. 팀장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채근하는 업무는 다른 것인데 그 팀원은 끝내 팀장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신입이라면 모를까 이미 십수 년을 성실함만을 무기로 살아온 이들에게는 다른 무기를 들 근육은 사라진 지 오래라서 관리자로서는 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냥 이들을 상수로 놓고 이들에게 바랄 수 없는 업무까지 관리자가 더 많은 범위를 감당하며 일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과 한 팀이 되는 게 마냥 반가울 수가 없다.


'왜 나의 성실함과 묵묵함을 봐 주지 않느냐'라는 억울함을 오래도록 갖고 있었다면, 한번쯤은 지금 자신이 처한 환경과 자신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무엇인지 따져보고 그에 맞는 무기를 고쳐 들어보는 시도를 하면 좋겠다. 너무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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