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세상의 풍파에 무뎌져야 하는 것

by jenny

내가 학창 시절엔 원망했다. 회사 다니면서 왜 저렇게 힘들어서 일을 잠시 중단하고 마음병원을 다니는 것을 보고. 밥벌이를 해주는 짱짱한 친구들의 아버지가 술담배해도 그저 건강한 친구들의 아버지가 부러웠다. 얼마나 힘든지 공감하기 보다는 어린 나의 입장에서는 아니 뭐가 그렇게 힘들지라고 생각했다. 상대적로 공부만하고 친구들이랑 놀고 쉬고만 하는 아이의 나로서 그땐 그랬다. 그런데 지금 밥벌이를 하고 있는 나는. 그때 얼마나 그가 힘들었는지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이제야 이해하는 것 같다.



사회에서 바라는 어른의 기준이 있다. 적어도 몇 십년을 산 어른은 적어도 밥벌이는 해야하고 적어도 가정에서는 이런 역할을 해야하고 적어도 주변 회사 지인들과 인관관계는 원만해야하고 적어도 체력적으로는 출퇴근하고 퇴근 후 집에서의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주어야하고 적어도 회사에서 승진과 직원들과의 관계를 위해 회식을 해야하고. 그리고 가장 어려운 적어도 그저 무심코 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던지는 누군가의 화살과 사건에 무덤덤해야 한다. 그런 것에 눈물을 흘리고 과민 반응을 하고 욱하고 스무스하게 잘 받아치지 못하면 분위기 갑분싸된다.



나는 상당히 못됐다. 과거의 나는. 외부에서는 착한 척 내숭은 다 떨고 집에 와서 부모님께는 투정을 부렸다. 맞벌이 부모님을 두고서는 왜 내가 더 많은 지원을 받지 못했지하는 원망이 컸다. 의사 집안의 자식을 보며 그 아이의 무시할 수 없는 배경지식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나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이들을 보며 부러움에 휩싸여 원망을 하고 스스로라도 우뚝 서야지하고 생각했다. 얼마나 못됐었냐면 내가 부모님께 받지 못했었던 부족한 금전적 부분과 지식적인 부분들을 내가 키우게될 자식들에게는 부족하지 않게해줘야지하고 생각했다.



맞벌이 부모님께 그럭저럭 좋은 도덕적 가르침과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물론 금전적 지식적인 부분에서도 충분한 것들을 받고 자랐음에도 난 왜 그렇게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졌었을까.



그런데 지금 하루 8시간, 일주일 5일 상대적으로 워라벨이 있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밥벌이를 하며 육아를 한다는 것이 얼머나 힘든지 알겠다. 사실 혼자 나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다. 다른 회사들을 많아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현재 회사 직원분들이 정말 좋은 분들음은 인정한다. 그런데도 가끔 내 기준에 부족하다라고 느끼는 하루를 경험하면 그날은 되게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극뽁해서 다음날 출근을 하지만. 참 난 대단하고 감사한 부모님을 뒀구나하고 요즘 많이 느낀다. 또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밥벌이를 하는 또는 취준 중인 많은 한국인들이 대단하다고 새삼 느낀다.



서울살이를 하며 부모님께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해 부모님께서 현재는 성가신다고 한다. 요즘은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한다. 어릴 적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만들며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기계적으로 했었는데 지금은 그 말 그대로 진심으로 감사하다. 부모님도 부모님이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들인데 쉽지 않았을 거다.



공부도 운동도 꾸준히 복습하듯 인생도 복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더 잘 살 수 있을텐데. 어바웃 타임이 떠오른다. 좀 더 완성된 자신을 위해 시간을 거슬러 좋아하는 이에게 반복적인 고백을 하는 장면.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할걸. 할까말까 상당히 후회를 한다. 후에는 에이 쪽팔렸을 거야하며 내 결정이었는데 뭐 하고 안 하는 게 나았어 중간은 가잖아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과연 인생 n회차가 가능하면 그럴까.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참 한 번이 마지막인 시간이라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 참 때론 고맙기도 하지만 좀 그렇다. 좀 좀 야박하다.



야박하면 어떻게 한 번 뿐인데. 벼락치기 전 마지막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요약집을 보며 거의 초능력급 집중력으로 그것을 익히려고 애쓴다. 왜 인생은 마지막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책임을 계속 놓치는 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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