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하여

안톤 체호프의 단편을 보며.

by 상민
훌륭한 교육이란, 식탁보 위에 소스를 엎지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소스를 엎질렀을 때 그것을 못 본 척하는 것이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인 <다락방이 있는 집 Дом с мезонином>에서 쓰인 어느 구절이다. 언제 한 번 이런 구절을 스토리에 올렸던 기억도 생생하다. 민중을 대하는 태도를 이른바 ‘소스론論’으로 열변하던 리디아의 생각을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인텔리였던 그녀가 마치 위에서 아래로 시선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나였으나, 작금에는 분명 리디아도 민중을 사랑해서 내뱉은 진심이었을 거란 생각에 이르게 되었으니, 그녀는 나를 교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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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위에 새콤한 케첩을 흘렸던 적이 있었는지? 더군다나 그날 입은 바지가 유독 새하얗다면? 불쾌함이 확 몰려온다. 순백의 바탕에 균일하지도 않은 새빨간 자국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적赤과 백白의 경계가 선명해지더니 이내 새콤했던 향이 쿰쿰한 시큼한 냄새로 느껴지진 않았는지. 외마디 욕설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면 멀쩡한 인간들 투성이다. 바지를 벗을 순 없으니 외투나 상의를 벗어 허리춤에 묶어 둘까, 아니면 세면대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며 선명한 자국을 지워 없애 버릴까. 귀가하기 전까지 나의 시선은 온통 그 빨간 점, 그러니까 언제든 묻을 수 있는 것에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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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를 흘리지 않도록 할 순 없다. 소스가 담긴 병이 깨지든, 어느 누가 재채기를 해서 그의 체액과 함께 묻을 수 있는 게 소스가 아니던가. 소스를 흘리는 것과 흘리지 않는 것, 소스가 묻은 사람과 묻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 짓지 말라는 감동적인 이야기. 그리고 가볍게 휴지를 건네주며 전하는 걱정 어린 시선, 이것이 리디아의 소스론이지 않을까. 그래도 흰 바지에 뭔가 묻는 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