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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두란 Oct 03. 2024

성장을 돕는 것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것입니다.

교육과 상담, 농사의 공통점


교육도 농사처럼 그로잉(Growing)하는 것-


  "교육적 교류분석에서 교육자의 역할은 산파 또는 농부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p.20


  저와 남편은 사범대학 캠퍼스 커플이었습니다. 우리는 교양수업으로 심리학과 수업을 같이 듣기도 했고, 남편이 군대에 갔을 때는 저 혼자 철학과 수업을 듣기도 했습니다. 영어교육을 전공한 남편은 학교 현장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퇴근 후 교육대학원에 가서는 교육철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보다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 '학생을 어떠한 존재로 볼 것인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인간에 대한 철학이 없이 인간을 가르친다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서로가 힘든 일이 됩니다. '교육적 교류분석'이라는 책에서 Giles Barrow와 Trudi Newton은 교육자의 역할을 농부에 비유합니다.  


  "정원사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화초가 잘 자라서 꽃이 활짝 피게 되는 것이다. 정원사는 화초에게 자기의 뜻을 강요하지 않으며 화초 본래의 특성대로 잘 성장하게 할 뿐이다. 이것은 학생이 어떤 경로를 선택하더라도 교육자는 절대로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또 모든 유기체는 건강하게 자기를 관리할 수 있고, 우리 모두는 깊은 지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p.21


  책을 읽고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그렇지, 식물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없지!"라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우리는 교사의 일도 농부의 일과 다름이 없다는 이야기를 실컷 주고받았습니다.


잡초를 뽑을 때면 잡생각도 함께 우두둑 뽑혀 나간다-


  친정 부모님께서는 경남 의령에서 치유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류지를 마주하고 터를 잡은 친정 집 마당에는 갖가지 꽃이 피어있고 원예작물을 활용한 치유농업을 목적으로 지금도 여전히 가꾸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농장에는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잠시 가두어 둔 물놀이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멀리 도시에서 아이들이 놀러 와 개구리도 잡고 물총놀이도 하며 즐겁게 놀다갑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저에게서 '저기에 토란을 심으면 좋겠다!'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친정 엄마에게 물놀이장 곁에 토란을 심어달라고 부탁하였고, 나는 친정에 갈 때마다 토란에게 물을 주며 잡초를 뽑아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물가에 토란을 심으면 좋겠다는 교육적 아이디어를 낸 것은 저였지만, 그 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물을 주는 것과 잡초를 뽑아주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언제 얼마만큼 자랄 것인지, 어떤 모양으로 자랄 것인지는 토란의 일이었습니다. 토란 잎에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대도 소용이 없습니다. 토란은 묵묵히 자신의 시간표대로 성장할 것입니다. 다만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는 우리의 노력 덕분에 더 건강하고 튼실하게 자랄 것입니다.


페트병에 구멍을 뚫어 빗줄기를 만들고 토란 잎에 물방울이 굴러내리는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있는 놀이-


  우리는 재미있고 유용한 아이디어를 가진 교육자가 되어야 합니다. 직업적으로 교사이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든, 직장에서 직원들을 관리하는 관리자든, 마음을 치료하는 상담사든 우리는 모두 교육자입니다. 통제하고 성과를 기대하는 것 대신, 성장이 일어날 수 있음을 믿고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씨앗에서부터 깊은 지혜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교류분석의 철학인 'I'm OK, You're OK'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돌보는 자녀와 학생 그리고 성인학습자들을 긍정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 교육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류분석이 좋습니다.


  농사를 짓는 일처럼 교육과 상담 또한 우리가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상담사로서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임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나의 능력과 무능력의 결과가 아닐 수 있음을 수용한다면 우리의 어깨가 좀 더 가벼워질 것입니다.


성장하는 모든 이들에게
비옥한 토양이 되어주기


  저는 부모교육 강사로서 흙과 토양, 대지를 부모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부모와 마찬가지로 교육자나 상담사 또한 그들이 할 일은 자녀와 학생, 그리고 내담자에게 비옥한 토양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나무와 열매가 할 일은 그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묵묵히 기다려줍시다. 우리가 할 일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기 위해 많은 유기체들과 공존하고 환경과의 연결을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유기농법은 토양을 비옥하게 해 줍니다. 재배 작물을 다양하게 하고 윤작을 하며, 거름이나 짚 등의 유기물질을 이용하여 토양을 비옥하게 함으로써 식물이 잘 자랄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요즘의 농업은 손쉬운 화학비료를 주로 사용합니다. 화학비료는 식물의 생장만 도울뿐 토양과 토양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벌레들을 훼손하고 죽입니다.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 부모 자신을 희생하는 요즘의 육아 세태와도 다를 바 없는것 같습니다.


  우리는 좋은 부모, 좋은 교사, 좋은 상담사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방법을 적용해 본다면, 다양한 세대와 다양한 문화를 공유하고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통해 자신만의 속도로 머무르지 않고 성장하는 노력만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식물의 성장은 식물이 할 일이고, 식물의 성장을 돕기 위한 토양의 노력은 토양 자신을 비옥하게 하는 것입니다. 생을 조금 앞서 먼저 살아봤다는 것을 벼슬 삼아 성장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가르치려 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땅 위의 일에 간섭하느라 땅 속을 비옥하게 하는 일들을 소홀히 해서는 식물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토양처럼만 했으면 합니다. 그저 자연이 되어보기를 바랍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참고문헌] 교육적 교류분석 : 이론과 실천에 따른 국제적 안내서, Edited by Giles Garrow와 Trudi Newton, 송희자 외 옮김, 아카데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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